마음의 허기를 채우는 행복한 명절을!
마음의 허기를 채우는 행복한 명절을!
by 운영자 2013.02.08

문덕근
순천이수초등학교장
고 향을 떠났던 사람들이 부모님과 고향 산천을 그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옛 시장에서 선물을 사고, 고향 열차표를 예매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를 흐뭇하게 만든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부모님을 직접 찾아뵙지 못하고 마음을 대신 담은 선물 꾸러미를 부치기 위해 택배회사를 찾는 사람들이 그리운 이를 생각하며 행복해 하던 옛 명절의 모습들이 그리워진다.
일부 출향민 사이에서는 명절임에도 불구하고 고향을 찾지 않거나 애써 고향을 잊으려 하는 사람들마저도 생겨나고 있다.
연어가 되돌아오지 않고 철새가 떠나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고향 환경이 변해가는 것 보다는 내 마음이 예전 같지 않고 고향의 인심 또한 그때 그 시절 같지 않음이 그 이유일 것이다.
내가 애타게 그리던 그 때의 풍경이 사라지고, 고향을 떠날 때 동구 밖에서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며 손을 흔들어 주던 정다운 얼굴을 볼 수 없는 것도 한 이유일 것이다.
음력 1월 1일을 설날이라고 한다. 설이라는 말은 ‘사린다’ ‘사간다’라는 옛말에서 유래된 것으로 ‘삼가다’ 또는 ‘조심하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설날은 일 년 내내 탈 없이 잘 지낼 수 있도록 행동을 조심하고, 조심스럽게 첫 발을 내딛는 매우 뜻 깊은 명절로 여겨져 왔다.
하루 일과가 끝나고 삼겹살에 소주 한잔을 기울이고, 남은 동료들과 통닭과 맥주로 2차를 채우고 배가 불룩해진 채 귀가하던 경험이 있으리라.
그러다 불현듯 찾아오는 외로움과 삶의 무게에 지쳐 홀로 포차에 앉아 우동 한 그릇으로 마음의 허기를 채우던 기억 말이다.
친구들과 왁자하게 떠들며 맛있는 것을 먹어보아도 어쩐지 채워지지 않는 마음 한 구석의 외로움을 떨쳐내고자 방황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발견하던 때가 있다.
현재는 과거와 미래 사이에 끼어 있는 시간으로, 삶의 형태는 문화의 유동성을 쫓아 변모하게 된다.
효를 중시하는 유교 사상과 노동력을 얻기 위한 공동체적 생활 풍습을 유지하던 농경 시대에서 산업 사회로의 이동으로, 서구문화의 개인주의적 삶이 우리 주위에 보편화 되면서 가족 풍습도 예외 없이 변모해 왔다.
모든 변화의 과정에는 필연적으로 옛것과 새 것이 서로 갈등을 일으키며 충돌하게 되는 과도기 현상이 나타나는데 가족 풍습도 예외는 아니다.
가족 풍습에서 나타나는 과도기적 현상으로는 전통을 중시하는 노인 세대와 신세대 사이에 있는 속칭, 낀 세대의 등장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낀 세대란 전통적 풍습에 의해 연로한 부모를 모시는 일을 도리로는 알고 있지만 자신들의 노후는 자녀들에게 의존할 수 없는 중년층을 일컫는다.
아무리 행복한 삶도 슬픔이 반이라고들 한다. ‘슬픔이란?’, 이 질문은 다양한 색깔의 답변을 가져온다, 사건을 이야기하는 분들도 있고 감성적인 해석을 하는 분들도 있다.
답변이 어찌되었건 피하고 싶은 감정인 것은 분명하다.
요즈음 가장 회자되고 있는 단어가 ‘행복’이라는 말인데 이를 부정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는 행복한 삶에 비해서 ‘슬프다.’, ‘외롭다.’라는 단어는 우리 인생에 여전히 핵심 콘텐츠이다.
아무리 행복한 인생이라도 최소한 반은 슬픔이 존재하기 때문에 행복을 더 채워 넣기에 급급한 것보다는 슬픔의 시기를 잘 향유하는 마음을 챙기는 지혜의 길이 더 절실하다.
고향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의 손에 들린 선물 꾸러미도 좋고, 비록 고향에 오지는 못하지만 마음을 담아 보내오는 자녀들의 택배선물도 물론 반갑다.
하지만 타향살이의 서러움을 허심탄회하게 털어 놓고 가족들과 함께 나누는 가족 간의 대화를 통해, 그 안에서 서로 주고받는 위로와 즐거움을 통해 ‘이제야 부모님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겠다.’는 자녀들의 웃음 가득한 이야기와 손자들의 재롱이 더 그리운 것이다.
‘어릴 적, 고향에서 겪은 체험이 지금의 나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너무 힘들어서 잊고 싶었고 멀리하고 싶었지만 끝끝내 나의 뿌리가 되고 근원이 된 것은 바로 고향이다.’라는 아름다운 이야기꽃들이 부모의 마음을 행복으로 물들일 수 있다면 그 또한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들어간 것이 나의 자랑거리가 되고, 가족 중에 잘 나가는 사람이 있어서 행복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밖으로 나타나 보이는 모습과 다르게 마음의 허기가 넘쳐날 수 있다.
신체적 허기는 금방 채울 수 있으나 따뜻한 감성적 흐름이 막혀 있다면 희생에 대한 심리적 보상은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
비록 좋은 직장에는 다니지는 못하더라도, 누군가에게 자랑거리가 될 만한 가족이 없더라도 마음만으로도 살갑게 서로의 인생을 묻고 삶을 나누는 가족의 존재만으로 편안함과 심리적 보상이 더해지며, 삼가고 조심하라는 진정한 설날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명절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