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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올거야”

“봄은 올거야”

by 운영자 2013.02.15

올 겨울은 유난히 춥고 눈도 많이 내렸다. 추위에 내성이 약해진 탓인지 옷섶을 파고드는 칼바람이 뼛속까지 스며든다. 함박눈 내리면 꽃잎처럼 편편히 흩날리던 설렘도, 순백의 추억도 사라지고 제설작업 걱정이 앞선다.

서울에 16.5㎝의 폭설이 내린 날 아침엔 어둠이 걷히기 전에 일어나 눈을 치우러 나갔다. 늦장을 부리면 서둘러 출근하는 사람들이 찍어 놓은 발자국에 눈이 얼어붙는다. 발목까지 빠지는 눈을 넉가래로 밀어낸다.

담 귀퉁이와 전신주 밑으로 눈을 모으지만 쌓인 눈이 워낙 많아 산더미를 이룬다.

골목 맞은 켠 집엔 팔순 어르신이 혼자 살고 있어 공동 작업을 기대하기 어렵다. 뒤늦게 나온 어르신은 “눈 올 때 마다 번번이 신세를 진다”며 미안해한다. 설날 아침에도 골목의 눈을 쓸면서 명절을 맞았다.

좁은 골목 제설작업도 귀찮고 힘든 데 보급로와 작전로를 쓸어야 하는 장병들은 눈과의 전쟁이다. 오죽하면 눈을 ‘하늘에서 내리는 쓰레기’라고 하겠는가. 강원도 철원지방은 올 겨울 서른 차례 넘게 눈이 내렸다니 하늘을 원망하며 봄이 오길 기다린다.

최근 우리 공군이 제작하여 인기몰이 중인 ‘레밀리터리블’동영상은 40여 명의 군인이 “제설, 제설 삽을 들고서∼”를 합창하며 활주로에 쌓인 눈을 치우며 첫 장면이 시작된다.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 첫 장면 죄수들의 노역이 떠올라 혼자 웃었다. 기발하고 재치 넘친다. 홍보영화의 속성인 메시지 전달이 아니라 스토리텔링으로 병사들의 애환을 13분에 담아 재미와 감동을 준다.

제설작업에 투입된 이병 장발장은 면회 온 여자 친구 얼굴만 보고 돌아와 헤어져야하는 상황설정은 감성을 자극하여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상사와의 갈등도 드라마적 요소다. 출연한 장병들의 노래와 연기도 신선하고 풋풋하다.

영화 ‘레미제라블’에서 형사 자베르 역을 연기한 배우 러셀 크로우가 '레밀리터리블'을 리트윗하면서 네티즌들의 반응이 뜨겁다. 미국과 영국 등 주요 언론들은 앞 다투어 소개한다.

싸이의 ‘강남 스타일’만큼 전염성이 강한 것으로 평가하며 또 다른 돌풍을 예고했다. 동영상의 마지막 장면 또한 ‘레미제라블’의 OST ‘내일은 온다’를 ‘봄은 올거야’로 개사하여 “쓸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활주로의 눈더미 하지만 난 괜찮아 곧 봄이 온다”는 합창으로 끝난다. 봄이 오면 눈을 쓸지 않아도 햇살과 바람과 봄비가 말끔히 치워줄 테니까.

한파와 폭설 속에 잔뜩 움츠린 탓인지 봄이 더 간절하게 기다려진다. 봄의 길목 입춘이 지났고 강물이 풀린다는 우수가 코앞이니 봄은 멀지않았다. 양지바른 언덕에 해쑥이 고개를 내밀 듯 희망의 새싹 틔우며 봄맞이 채비를 서두를 때다.

[글/이규섭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