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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에 대한 대답

모든 것에 대한 대답

by 운영자 2013.03.20

정말로 추웠던 그 밤, 난 내 앞에 있는 나무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바람 때문이었습니다. 그날 밤, 나는 꼭 얼어 죽는 줄 알았습니다.

추워도, 추워도 그렇게 추운 건 처음이었으니까요.

가느다란 가지 끝에서 땅 속 실뿌리 끝까지 구석구석 온 몸을 흐르며 마실 물을 전해 주었던 작은 물줄기가 멈춰 서고 말았습니다. 늘 정겹던 밤하늘의 별들도 그 날은 왜 그리 차갑고 멀던지요.

그렇게 온 몸이 얼어붙기 시작하자 제일 먼저 찾아온 건 졸음이었습니다. 기다렸다는 듯 와락 졸음이 몰려왔습니다. 끝 모를 수렁 속으로 미끄러지듯 나는 잠속으로 빠져 들었습니다.

한 개씩 한 개씩 가슴속 불이 꺼져가며, 나는 깊은 잠속으로 빠져 들었습니다.

그 때 나를 흔들어 깨운 것이 바람입니다. 누군가 온 몸을 마구 흔들어 대어 눈을 떠보니 바람이었습니다. 칼로 긋듯이 바람은 얼어붙은 몸을 사정없이 흔들어댔습니다.

뭔가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난 울고 말았습니다. 왈칵,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졌습니다.

바람은 추위보다도 더 무서웠습니다. 바람 앞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몸이 부러지지 않게 힘주어 온 몸을 감싸 안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렇게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바로 그 때, 내 앞에 서 있는 나무를 보게 된 것입니다.

온통 내 부러움을 산 그 나무를 말입니다. 그 나무는 추위는 물론 바람 앞에서도 끄떡하지 않았습니다. 무슨 이유에선지 그 나무는 지난해부터 푸른 잎을 내지 않더니, 잔가지마저 모두 떨어뜨리고 굵은 몸뚱이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 나무는 내 앞에 우뚝 버티고 서서 나를 비웃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도 어쩔 줄 모르고 흔들리는 내 자신이 그렇게 초라해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터질 듯 얼어붙은 몸이 정신없이 흔들리며 밤을 새우던 그 밤, 난 참 많이 울었습니다. 겨울밤은 무척 길었습니다.

어느덧 봄이 왔습니다. 사람들은 달력으로 알지만 우린 볕과 바람으로 압니다. 봄이 되면 모든 것이 긴 잠에서 깨어납니다. 그러나 실은 봄은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 아니라, 겨울에서 깨어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봄은 겨울을 이긴 자만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어린 제가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지난겨울 그 혹독한 추위를 맛보았기 때문입니다.

보세요, 제가 그날 밤 그토록 부러워했던 제 앞의 저 시커먼 나무는 봄이 온 지금도 깨어날 줄 모르는 걸요.

전엔 몰랐지만 이젠 제 몸에서 돋아나는 아기 손톱 같은 진노랑 꽃잎 하나하나를 더없이 사랑합니다. 왜냐하면 이건 겨울을 이겨낸, 잠의 유혹을 이겨낸 내 빛깔이며 향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날 밤, 그토록 견디기 어려웠던 추위와 잠든 나를 마구 흔들어 깨웠던 바람, 이젠 모두에게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눈이 부실 만큼 생명으로 가득 찬 나의 봄은 그들이 가르쳐 준 귀한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공원을 지날 때 어디선가 누군가가 부르는 듯하여 주변을 돌아보니 산수유였습니다.

키 작은 산수유나무에서 막 눈을 뜨는 산수유가 자기가 지내온 겨울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앙증맞은 노란꽃망울, 이것은 내가 겪은 겨울에 대한 내 대답이라고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