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비탈에 선 나무
강비탈에 선 나무
by 운영자 2013.03.25
강비탈에 선 나무들은 평생 불안한 상황에서 살아가야만 한다. 그러나 강비탈에 선 나무들의 삶이 항상 고단한 것은 아니다.
생명체들의 삶은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고 해서 반드시 힘들거나 불행한 것은 아니다. 반대로 조건이 좋은 곳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들이 반드시 편하거나 행복한 것도 아니다.
강가 비탈에 선 나무들은 늘 위기에 놓여 있어서 넘어지지 않기 위해 언제나 자신을 바로 잡는다.
그래서 강가 비탈에 선 나무들은 힘든 만큼 행복하게 살아간다.
많은 사람들이 조건이 좋은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부러워한다.
그러나 모든 생명체들은 매일 걱정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다만 걱정에 대처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걱정에 대한 대처 방식이 곧 생명체의 미래를 결정할지도 모른다.
강가 비탈에 살아가는 나무들이 아주 오랫동안 탈 없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노라면, 걱정이 오히려 미래를 밝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강가 비탈에 살아가는 나무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다시 성찰한다.
강가 비탈에 선 나무들 몸에 크고 작은 새들이 줄기와 가지를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나무들은 자신의 몸에 다른 생명체들이 마음껏 기대더라도 기꺼이 받아들인다.
나무들이 이런 자세로 하는 것은 단순히 새를 비롯한 다른 생명체들이 자신들의 후손 번식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 아니다. 나무들은 한 평생 살면서 누군가와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나무들은 누군가가 자신의 몸에 기대는 순간, 자신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안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일을 모두 자신의 일로 생각하면서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어떤 경우든 내게 오는 모든 일은 애초부터 나의 일이기 때문이다.
나의 일이 아니라면 그 일이 내게 오지 않았을 것이다. 일을 피하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은 나무의 자세이다.
나무는 한 평생 어떤 일도 피하지 않고 살아간다. 나무가 어떤 일도 피하지 않는 것은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피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강비탈에 선 나무들은 태풍과 강물을 피하지 않고 평생을 살아간다. 그래서 나는 봄날 강가 비탈에 선 나무를 찾아 한 해를 열심히 살아가길 다짐했다.
돌아오는 길에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면서 무심사(無心寺)라는 사찰의 이름을 다시 기억했다. 그 어떤 것도 집착하지 않고, 그 어떤 것도 거부하지 않는 강물 곁에 살아가는 나무들도 무심한 존재들이다.
나무와 강물처럼 무심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매일 매일 극락과 천국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강비탈에 선 나무들이 봄 햇살에 기대어 열심히 잎과 꽃을 피운다.
<강판권 교수>
생명체들의 삶은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고 해서 반드시 힘들거나 불행한 것은 아니다. 반대로 조건이 좋은 곳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들이 반드시 편하거나 행복한 것도 아니다.
강가 비탈에 선 나무들은 늘 위기에 놓여 있어서 넘어지지 않기 위해 언제나 자신을 바로 잡는다.
그래서 강가 비탈에 선 나무들은 힘든 만큼 행복하게 살아간다.
많은 사람들이 조건이 좋은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부러워한다.
그러나 모든 생명체들은 매일 걱정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다만 걱정에 대처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걱정에 대한 대처 방식이 곧 생명체의 미래를 결정할지도 모른다.
강가 비탈에 살아가는 나무들이 아주 오랫동안 탈 없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노라면, 걱정이 오히려 미래를 밝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강가 비탈에 살아가는 나무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다시 성찰한다.
강가 비탈에 선 나무들 몸에 크고 작은 새들이 줄기와 가지를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나무들은 자신의 몸에 다른 생명체들이 마음껏 기대더라도 기꺼이 받아들인다.
나무들이 이런 자세로 하는 것은 단순히 새를 비롯한 다른 생명체들이 자신들의 후손 번식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 아니다. 나무들은 한 평생 살면서 누군가와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나무들은 누군가가 자신의 몸에 기대는 순간, 자신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안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일을 모두 자신의 일로 생각하면서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어떤 경우든 내게 오는 모든 일은 애초부터 나의 일이기 때문이다.
나의 일이 아니라면 그 일이 내게 오지 않았을 것이다. 일을 피하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은 나무의 자세이다.
나무는 한 평생 어떤 일도 피하지 않고 살아간다. 나무가 어떤 일도 피하지 않는 것은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피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강비탈에 선 나무들은 태풍과 강물을 피하지 않고 평생을 살아간다. 그래서 나는 봄날 강가 비탈에 선 나무를 찾아 한 해를 열심히 살아가길 다짐했다.
돌아오는 길에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면서 무심사(無心寺)라는 사찰의 이름을 다시 기억했다. 그 어떤 것도 집착하지 않고, 그 어떤 것도 거부하지 않는 강물 곁에 살아가는 나무들도 무심한 존재들이다.
나무와 강물처럼 무심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매일 매일 극락과 천국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강비탈에 선 나무들이 봄 햇살에 기대어 열심히 잎과 꽃을 피운다.
<강판권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