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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편지

4월의 편지

by 운영자 2013.04.01

어린 시절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4월의 노래를 함께 부르며 무지개 꿈을 키우던 동무들아. 우리 생애 또 한 번의 4월이 시작되었구나.

4월이면 대지를 뚫고 새 생명들 움터오는 봄의 소리, 그 강인하면서도 부드러운 대자연의 함성이 터져 나오는데 언제인가부터 우린 그 소리를 들을 수 없다. 그 대신 ‘잔인한 4월’이란 소리만 귀에 쟁쟁하다.

그런데 왜 엘리엇은 그의 시 <황무지>에서 4월을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말했을까? 엘리엇은 문명의 황폐화를 겨울의 황무지에 비유한 다음 ‘이러한 황무지에 희망의 씨앗을 싹트게 하기 위해서는 각자가 껍질을 뚫고 나오려는 의지와 각성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피하고 싶은 잔인한 각성이다. 새로 싹을 틔어 고난의 삶을 시작하는 계절이기에 반어법으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엘리엇으로부터 각성하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에게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지만 그것은 곧 진정한 희망의 달이라는 메시지를 전해 받게 된다.

그런데 동무들아, 우리는 어쩌다 모이면 지난날 보릿고개를 넘으려 산과 들로 헤매던 산골소년 시절을 그리워하지! 그런데 우리는 왜 찢어지게 가난하고 밥 한 그릇에 춥고 서러웠던 지난날을 그리워할까?

엄동의 세월이 지나고 새봄이 다가와 눈 녹듯이 경제사정이 좋아져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건 될 수가 있는 세상’이 되었다지만 실상 겉과 속이 다르기 때문이다.

겉보기엔 ‘하늘엔 조각구름 떠있고/강물엔 유람선이 떠있고/저마다 누려야할 행복이/언제나 자유로운 곳…’이 알고 보면 약육강식의 세계, 동물의 왕국이라면 이 얼마나 비극인가?

그러나 그것이 현실이야. 누가 나를 해칠지 모르니 믿을 사람이 없고, 언제 도태될지 모르니 잠시도 안심할 수 없다.

이젠 부모자식도 믿을 수 없으니 생존을 위해 너도나도 스스로 무장을 해야 한다. 세상은 생존을 위한 전쟁터이다. 그래, 나 살자고 무장하고 전쟁하다가 끝나는 우리의 인생 이 얼마나 비극인가?

행복한 삶을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서는 욕망을 줄여야 하는 고통이 필요하다. 어쩌면 자본주의사회에서 욕망을 줄인다는 것은 스스로 무장해제를 하는 것과 같다.

이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언제 어디서 누가 나를 해칠지도 모르는 이 험한 세상에서 무장해제한다는 것은 참으로 스스로에게 잔인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새로운 삶, 어릴 때 꿈꾸던 순진무구한 행복을 얻으려면 무장을 해제해야 해.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4월의 노래를 함께 노래 부르던 내 동무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 하고 있을까? 이제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는데 여전히 중무장 한 채 ‘아, 옛날이여’를 노래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제부터라도 무장을 해제하고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아’ 4월의 노래를 이어 부르며 스스로 무장해제하고 ‘잔인한 4월’을 맞았으면 좋겠다.

그것이 진정 우리가 어린 시절 꿈꾸던 행복의 나라로 이끌어 줄 테니까…

<이성록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