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이 별건가
힐링이 별건가
by 운영자 2013.04.05
“힐링이 별 건가, 숲길 걸으며 맑은 공기 마시고 여유를 누리면 그게 힐링이지”
“힘들지 않지, 돈 안 들지, 젊은이들 눈치 안 봐도 돼지, 늙은이들을 넉넉하게 받아주는 곳은 둘레길 밖에 없다니까”
은퇴자들이 북한산 둘레길을 걸으며 주고받은 대화다. 지난 주말 겨우내 움츠렸던 심신의 주름살을 펼 겸 이름도 고운 ‘구름정원길’을 걸었다.
서울의 서쪽 동네를 넘나드는 제8구간 구름정원길은 진관동 생태다리 앞에서 북한산생태공원 상단까지 4.9㎞ 거리다. 3호선 구파발역에서 버스를 타고 하나고등학교에서 내려야 된다지만 내친 김에 그냥 걸었다.
둘레길 들머리에 접어들자 세종의 서자 화의군(和義君) 묘역이 발길을 잡는다. 그는 세조가 권력을 찬탈한 뒤 단종 복위사건에 연루되어 전라도 금산(지금은 충남)으로 유배되었다가 사사된 비운의 왕족이다.
학문에 조예가 깊어 세종의 한글창제에 참여했으나 묘는 작고 초라하다. 그 아래 두 아들과 증손자가 묻혀있다.
평지에서 산으로 접어드는 길은 급경사는 아니라도 가파르다. 숨을 고르며 천천히 오른다. 흙길을 걷는 발바닥의 감촉은 부드럽고 솔숲과 잣나무 숲을 스치는 바람결은 상큼하고 향기롭다. 산수유가 꽃망울을 터트렸고, 진달래도 수줍은 듯 고개를 내밀었다.
둘레길 노면은 잘 정비되어 스틱을 짚지 않아도 된다. 간편한 복장에 모자를 눌러 쓰고 물통하나 들고 가면 그만이다. 기자촌전망대를 지나 쉼터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표지판에 새겨 놓은 이해인의 시를 감상하는 여유를 누린다. ‘좋아하면 할수록 산은 조금씩 더 내 안에서 크고 있다’고 노래한다.
구름정원길은 선림사와 불광중학교 부근에서 주택가 사이를 거쳐 다시 둘레길로 이어지다 보니 부작용도 드러났다. 주말이면 주변 골목에 무단 주차하고, 쓰레기와 담배꽁초를 버리는 몰지각한 행위로 주민들의 민원이 잦다고 한다.
등산로 주변에는 ‘애완동물을 데려와선 안 됩니다’, ‘산악자전거 이용을 금합니다’라는 푯말이 주민들의 불편을 짐작케 한다. 그런가하면 집게와 비닐봉지를 들고 산의 쓰레기를 수거해 내려오는 참 착한 둘레길 순례자도 눈에 띄어 대조적이다.
구름정원길의 하이라이트는 구기터널 상단지역의 계곡을 가로지르는 60m 길이의 스카이워크 테크로드.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느낌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하늘전망대에 오르면 서울의 서쪽 도심이 펼쳐진다.
북한산생태공원까지 느릿느릿 3시간 가까이 걸렸고, 불광동 먹자골목으로 길은 이어진다. 둘레길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느리게 걷는 게 묘미다. 정상을 향해 숨 가쁘게 오를 필요도 없고 갈 수 있는 만큼 걸으면 되는 안분지족의 길이다.
분수를 모른 채 삶의 정상을 향해 옆길도 살피지 않고 걷다가 낙마하거나, 자리보전을 위해 안간힘 쓰는 사람들에겐 삶의 지혜를 던져 주는 길이다. 식목일자 한식 청명이다.
꽃보다 아름다운 연초록 신록이 어우러지는 계절, 팍팍한 일상을 잠시 접고 둘레길을 쉬엄쉬엄 걷다보면 심신에 활력이 절로 솟는다.
이규섭 시인
이규섭 시인
이규섭 시인
“힘들지 않지, 돈 안 들지, 젊은이들 눈치 안 봐도 돼지, 늙은이들을 넉넉하게 받아주는 곳은 둘레길 밖에 없다니까”
은퇴자들이 북한산 둘레길을 걸으며 주고받은 대화다. 지난 주말 겨우내 움츠렸던 심신의 주름살을 펼 겸 이름도 고운 ‘구름정원길’을 걸었다.
서울의 서쪽 동네를 넘나드는 제8구간 구름정원길은 진관동 생태다리 앞에서 북한산생태공원 상단까지 4.9㎞ 거리다. 3호선 구파발역에서 버스를 타고 하나고등학교에서 내려야 된다지만 내친 김에 그냥 걸었다.
둘레길 들머리에 접어들자 세종의 서자 화의군(和義君) 묘역이 발길을 잡는다. 그는 세조가 권력을 찬탈한 뒤 단종 복위사건에 연루되어 전라도 금산(지금은 충남)으로 유배되었다가 사사된 비운의 왕족이다.
학문에 조예가 깊어 세종의 한글창제에 참여했으나 묘는 작고 초라하다. 그 아래 두 아들과 증손자가 묻혀있다.
평지에서 산으로 접어드는 길은 급경사는 아니라도 가파르다. 숨을 고르며 천천히 오른다. 흙길을 걷는 발바닥의 감촉은 부드럽고 솔숲과 잣나무 숲을 스치는 바람결은 상큼하고 향기롭다. 산수유가 꽃망울을 터트렸고, 진달래도 수줍은 듯 고개를 내밀었다.
둘레길 노면은 잘 정비되어 스틱을 짚지 않아도 된다. 간편한 복장에 모자를 눌러 쓰고 물통하나 들고 가면 그만이다. 기자촌전망대를 지나 쉼터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표지판에 새겨 놓은 이해인의 시를 감상하는 여유를 누린다. ‘좋아하면 할수록 산은 조금씩 더 내 안에서 크고 있다’고 노래한다.
구름정원길은 선림사와 불광중학교 부근에서 주택가 사이를 거쳐 다시 둘레길로 이어지다 보니 부작용도 드러났다. 주말이면 주변 골목에 무단 주차하고, 쓰레기와 담배꽁초를 버리는 몰지각한 행위로 주민들의 민원이 잦다고 한다.
등산로 주변에는 ‘애완동물을 데려와선 안 됩니다’, ‘산악자전거 이용을 금합니다’라는 푯말이 주민들의 불편을 짐작케 한다. 그런가하면 집게와 비닐봉지를 들고 산의 쓰레기를 수거해 내려오는 참 착한 둘레길 순례자도 눈에 띄어 대조적이다.
구름정원길의 하이라이트는 구기터널 상단지역의 계곡을 가로지르는 60m 길이의 스카이워크 테크로드.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느낌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하늘전망대에 오르면 서울의 서쪽 도심이 펼쳐진다.
북한산생태공원까지 느릿느릿 3시간 가까이 걸렸고, 불광동 먹자골목으로 길은 이어진다. 둘레길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느리게 걷는 게 묘미다. 정상을 향해 숨 가쁘게 오를 필요도 없고 갈 수 있는 만큼 걸으면 되는 안분지족의 길이다.
분수를 모른 채 삶의 정상을 향해 옆길도 살피지 않고 걷다가 낙마하거나, 자리보전을 위해 안간힘 쓰는 사람들에겐 삶의 지혜를 던져 주는 길이다. 식목일자 한식 청명이다.
꽃보다 아름다운 연초록 신록이 어우러지는 계절, 팍팍한 일상을 잠시 접고 둘레길을 쉬엄쉬엄 걷다보면 심신에 활력이 절로 솟는다.
이규섭 시인
이규섭 시인
이규섭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