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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이 떨어질 때 즈음

꽃잎이 떨어질 때 즈음

by 운영자 2013.04.09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위의 글은 이형기(1933~2005) 선생님의 ‘낙화(落花)’라는 시이다.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시로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다고 한다.

매년 봄이 오고, 꽃잎이 떨어질 때 즈음 이형기 선생님이 떠오르곤 한다.

대학 학부 때, 부전공으로 국문학을 공부했다.

부전공을 선택할 당시, ‘낙화’를 쓴 시인 이형기 선생님이 동국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했기 때문이다. 20여년 전은 지금보다 늦은 시기에 꽃잎이 떨어졌고, 동국대 교정은 남산 중턱으로 꽃이 늦게 피고 진다.

꽃이 한창 피었던 봄날, 이형기 교수님 수업시간에 야외수업을 한 적이 있었다.

마침 벚꽃 잎이 눈발처럼 흩날리는데, 한 남학생이 낙화시를 낭송했다.

어느 여학생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었고, 이형기 선생님은 눈을 감고 제자의 낭송을 들었다. 지금은 수채화처럼 내 가슴속에 아름다운 여운으로 남아 있다.

강의를 하면서 20년전 이형기 교수님의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선생님은 스파르타식 교육이 아닌, 자유주의적이며 어떤 구속에 걸림이 없는 휴머니스트였다.

낙화 시에는 단순히 꽃잎이 떨어지는 낭만이나 무상함을 넘어 참다운 진리를 일깨워 주는 내용이 담겨 있어 이런 봄 즈음에는 수업시간에 학생들과 낭송해본다.

자신이 누리고 떠난 자리에 티끌을 남기지 않는 청빈과 고고함, 인생의 기복(起伏)에서 오르려고 애쓰는 것보다 제 때에 내려올 줄 아는 지혜, 자신에게 주어진 복이 있다면 그 복이 있을 때 아끼고 베풀 줄 아는 메시지가 담긴 시라고 생각된다.

<정운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