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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골 연주를 들으며

오르골 연주를 들으며

by 운영자 2013.04.10

우리가 인식하건 인식하지 못하건, 느끼건 느끼지 못하건 우리가 보내는 하루는 낮이라는 시간과 밤이라는 시간으로 이루어집니다. 밤 없이 낮으로만 이루어지는 하루가 없고, 낮 없이 밤으로만 이루어지는 하루도 없습니다.

때를 따라 길이의 차이가 있을 뿐 하루는 어김없이 낮과 밤으로, 밤과 낮으로 이루어집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낮의 시간처럼 밝음의 시간을 보낼 때가 있습니다. 즐겁고 기쁘고 감사한 일들을 만날 때입니다. 그럴 때면 기분이 상쾌하고 마음까지 가볍고 밝아 환히 웃게 됩니다.

대개는 원하는 일들이 뜻대로 이루어지고, 관심을 가지고 노력했던 것들이 좋은 결과로 나타날 때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잘 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큰 즐거움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나를 바라보는 이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시간 또한 우리의 마음을 밝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에는 그렇게 밝은 일만 찾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생각지 못한 어둠의 시간도 찾아옵니다. 실패를 경험하기도 하고, 좌절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병을 얻어 건강을 잃기도 하고, 뜻밖의 사고를 당하기도 합니다.

최선을 다한 결과가 최악의 상황으로 나타나 능력의 한계를 절감할 때도 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눈물을 닦을 때가 있고, 탄식의 이불을 덮고 잠을 설칠 때가 있습니다.

독일에서 지낼 때 재래시장을 찾았다가 오르골을 구입한 일이 있습니다.

아기 손바닥만한 작은 오르골이었습니다. 복잡하고 시끄러운 장터 어딘가에서 해맑은 소리가 나 주변을 둘러보게 되었는데, 마침 누군가가 오르골의 태엽을 감고 오르골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소리를 따라 가까이 다가가 같이 노래를 들었습니다. 아침 이슬처럼 느껴지는 맑은 소리가 고 작은 장치에서 울려나오고 있었습니다.

오르골을 수집했던 사람이었던지 고만고만한 오르골 몇 개를 펼쳐놓고 팔고 있던 중인지라 그 중 한 개를 골라 샀습니다. 물론 얼마든지 태엽을 감아 연주를 들어볼 수가 있었고, 부르는 값도 전혀 비싸지를 않아 내게는 선물이라고 여겨질 정도였습니다.

마치 시계태엽을 감듯 오르골의 태엽을 감으면 작은 쇠 원통이 돌아가며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합니다. “옛날부터 전해오는 쓸쓸한 그 말이”라는 노랫말로 시작하는 로렐라이 언덕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오는 것이지요.

가만 오르골을 눈여겨보면 피아노 건반을 닮은 가는 쇠막대 앞을 원통형의 쇠막대가 지나가다 원통 곳곳에 불규칙하게 박혀 있는 뾰족한 부분이 쇠막대에 닿아 소리가 납니다.

원통형에 박혀 있는 뾰족한 부분은 아무런 규칙이 없이 들쭉날쭉 박혀 있지만 사실 바로 그 부분이 노래를 연주하는 악기이자 악보가 되는 셈입니다.

오르골의 튀어나온 부분과 빈 공간이 조화를 이루며 하나의 곡을 연주하듯이 우리의 삶도 밝음과 어둠이 공존하며 조화를 이룹니다.

밝음만 바랄 것도 아니고, 어둠을 탓할 것만도 아닙니다. 빛과 어둠이 하나의 노래가 되도록 하는 것, 그것이 삶의 성실이지 싶습니다.

<한희철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