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하면 출세하라?
억울하면 출세하라?
by 운영자 2013.04.15
문득 어린 시절, 어른들이 주막에서 젓가락 장단에 목청 돋워 부르던 노래가 떠오른다.
“빙글빙글 도는 의자, 회전의자에 임자가 따로 있나, 앉으면 주인인데, 사람 없어 비워둔 의자는 없더라, 사랑도 젊음도 마음까지도 가는 길이 험하다고 밟아버렸다, 아~ 억울하면 출세하라 출세를 하라.”
그 옛날 ‘회전의자’라는 이 노래를 잊지 못하는 것은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을 지금도 흔히 듣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왜 ‘억울하면 출세하라고 할까?’ 출세해서 억울한 사람들 한을 풀어주라는 뜻일까? 하긴 그럴 수도 있다. 옛날에는 가난하게 살던 선비가 고생고생 끝에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암행어사가 되고, 마패를 번쩍 들어 “암행어사 출두요~”라고 외치면 휘하의 수많은 역졸들이 육모방망이를 들고 탐관오리들을 징벌하는 영화를 보고나면 속이 후련했으니까… 아무튼 옛날에는 억울하면 출세해서, 억울한 사람들 한을 풀어 준다는 목적의식이 있긴 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오늘날은 어떠한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을 들어 보았을 것이다. 죄를 지어도 돈 많으면 면죄이고, 돈 없으면 얄짤 없이 벌을 받게 된다는 말이다. 이와 함께 ‘유권(有權)무죄, 무권(無權)유죄’라는 말도 널리 쓰이고 있다.
즉 같은 죄를 지어도 권력이 있으면 면죄부 받고, 권력이 없으면 더 혹독하게 값을 치러야 한다는 말이다. 자기 자신의 잘못은 삽질하고 남의 잘못은 굴삭기로 파내는 불공정한 일이 예삿일이 되고 나니 억울하면 출세하여 권력을 잡으라는 것 아니겠는가?
권력이란 경중을 ‘저울질 하는 힘’이다. 결국 저울질은 저울 잡은 사람 마음에 달려 있다. 칼자루 잡은 놈이 임자라고도 하지 않던가?
대한민국은 굳이 통계지표를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불공정사회라는 사실은 삶 속에서 체득하고 있다. 오죽하면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할 때마다 ‘공정사회’를 천명하지 않던가! 그러나 언제나 “너나 잘하세요!” 소리나 듣다가 공염불이 되고 만다. 억울해서 출세한 사람들이 칼자루를 놓을 리가 없다.
그러다보니 공정사회는 아직 출세하지 못한 자들의 술자리 안주감에 머물고 있지만, 그나마 영화들이 대신 외쳐주고 있다.
즉 출세한 사람들이 아니라, 억울한 사람들이 직접 나서서 공정사회를 실현해 나간다는 스토리의 영화들이 해마다 등장하고 있다.
<친절한 금자씨>, <오로라 공주>, <도가니> 등에 이어 며칠 뒤에 <공정사회>라는 영화가 개봉된다고 한다.
그러나 영화는 영화일 뿐, 문제는 공정사회에 대한 기대가 사실상 없다는 것이다. 억울하여 출세한 사람들이 도리어 공정하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억울하면 출세하라지만 이젠 그 길마저도 막혀 버렸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차피 먹고 먹히는 세상인데 나만 아니면 그만’이라는 무기력과 무책임에 빠져들고 있다. 이러다간 출세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인정사정 볼 것 없이 타인을 짓밟고 욕망을 채우는 이상한 인간들이 준동하는 사이코패스의 전성시대가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이성록 박사>
“빙글빙글 도는 의자, 회전의자에 임자가 따로 있나, 앉으면 주인인데, 사람 없어 비워둔 의자는 없더라, 사랑도 젊음도 마음까지도 가는 길이 험하다고 밟아버렸다, 아~ 억울하면 출세하라 출세를 하라.”
그 옛날 ‘회전의자’라는 이 노래를 잊지 못하는 것은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을 지금도 흔히 듣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왜 ‘억울하면 출세하라고 할까?’ 출세해서 억울한 사람들 한을 풀어주라는 뜻일까? 하긴 그럴 수도 있다. 옛날에는 가난하게 살던 선비가 고생고생 끝에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암행어사가 되고, 마패를 번쩍 들어 “암행어사 출두요~”라고 외치면 휘하의 수많은 역졸들이 육모방망이를 들고 탐관오리들을 징벌하는 영화를 보고나면 속이 후련했으니까… 아무튼 옛날에는 억울하면 출세해서, 억울한 사람들 한을 풀어 준다는 목적의식이 있긴 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오늘날은 어떠한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을 들어 보았을 것이다. 죄를 지어도 돈 많으면 면죄이고, 돈 없으면 얄짤 없이 벌을 받게 된다는 말이다. 이와 함께 ‘유권(有權)무죄, 무권(無權)유죄’라는 말도 널리 쓰이고 있다.
즉 같은 죄를 지어도 권력이 있으면 면죄부 받고, 권력이 없으면 더 혹독하게 값을 치러야 한다는 말이다. 자기 자신의 잘못은 삽질하고 남의 잘못은 굴삭기로 파내는 불공정한 일이 예삿일이 되고 나니 억울하면 출세하여 권력을 잡으라는 것 아니겠는가?
권력이란 경중을 ‘저울질 하는 힘’이다. 결국 저울질은 저울 잡은 사람 마음에 달려 있다. 칼자루 잡은 놈이 임자라고도 하지 않던가?
대한민국은 굳이 통계지표를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불공정사회라는 사실은 삶 속에서 체득하고 있다. 오죽하면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할 때마다 ‘공정사회’를 천명하지 않던가! 그러나 언제나 “너나 잘하세요!” 소리나 듣다가 공염불이 되고 만다. 억울해서 출세한 사람들이 칼자루를 놓을 리가 없다.
그러다보니 공정사회는 아직 출세하지 못한 자들의 술자리 안주감에 머물고 있지만, 그나마 영화들이 대신 외쳐주고 있다.
즉 출세한 사람들이 아니라, 억울한 사람들이 직접 나서서 공정사회를 실현해 나간다는 스토리의 영화들이 해마다 등장하고 있다.
<친절한 금자씨>, <오로라 공주>, <도가니> 등에 이어 며칠 뒤에 <공정사회>라는 영화가 개봉된다고 한다.
그러나 영화는 영화일 뿐, 문제는 공정사회에 대한 기대가 사실상 없다는 것이다. 억울하여 출세한 사람들이 도리어 공정하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억울하면 출세하라지만 이젠 그 길마저도 막혀 버렸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차피 먹고 먹히는 세상인데 나만 아니면 그만’이라는 무기력과 무책임에 빠져들고 있다. 이러다간 출세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인정사정 볼 것 없이 타인을 짓밟고 욕망을 채우는 이상한 인간들이 준동하는 사이코패스의 전성시대가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이성록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