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에 동서로 갈 수 없다
동시에 동서로 갈 수 없다
by 운영자 2013.04.17
‘동시에 동서로 갈 수 없다’는 유대 격언이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지당한 말입니다. ‘同時’에 ‘東西’로는 도무지 갈 수가 없는 일, 고집 부려 가려해도 이내 멈춰 설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맘이 앞선다 해도 몸이 허락하지를 않습니다. 끝내 고집을 부리면 가랑이가 찢어지고 말 것입니다.
만약 동쪽이 내 길이라면 서쪽을 등져야 바라볼 수 있습니다. 서쪽을 등지지 않으면 내 길을 바라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고 보면 내가 내 길을 걷는다 함은, 매순간 등질 것을 등지고 있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말은 어렵고 혹 복잡할지 몰라도 생각하면 이 또한 지당한 일인데도 동시에 동서로 가려는 삶을 살 때가 있으니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이 자명한 모순을 전혀 느끼지 못할 때가 있으니 몸보다도 더 무딘 것이 마음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말에‘뿔’과 ‘뿌리’는 같은 어원을 가진 말이라고 합니다. 위로 솟아오른 '뿔'과 땅속으로 뻗은 ‘뿌리’, 서로 지향하는 방향이 반대인 두 단어가 한 어원에서 나왔다는 말이 뜻밖입니다.
두 말이 한 어원에서 나왔다 함은 그 근본은 같다는 것, 결국은 둘이 무관할 수가 없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한결같이‘뿔’을 ○○○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누가 더 높은가, 누가 더 빠른가, 누가 더 화려한가, 그것이 삶의 유일한 목표처럼 되었고, 그것이 성공의 척도처럼 자리를 잡았습니다.
짧은 기간에 더 높은 뿔의 자리로 오르는 것은 능력의 척도가 되었습니다. 더 높이, 더 빠르게, 더 화려해질 수만 있다면 어떤 수단과 방법을 택하든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친구도, 신의도, 양심도, 염치도, 신앙도 경우에 따라서는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것들은 '토끼의 간'처럼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일 뿐입니다. 제한속도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은 아우토반을 브레이크가 고장난 차를 몰고 질주하는 형국이 되어 버렸습니다.
나무는 정직해서 위로 자라난 높이만큼 아래로 뿌리를 뻗는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은 바람에게 진다고 합니다.
곳곳에서 흔하게 눈에 띄는 민들레조차도 땅속에서 물을 찾을 수가 없을 땐 스스로 자라기를 멈춘다고 합니다. 아무리 뿌리를 뻗어도 물기를 찾지 못하면 위로 자라는 것을 멈추는데, 그렇지 않으면 결국은 모두가 말라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뿌리에 대한 관심은 사라지고 뿔을 ○○○는데 마음을 빼앗긴 세태 속에서 과연 우리의 삶은 자유로운 것일까요?
쥐가 나는 줄도 모르고 까치발을 하고 키 자랑을 하는 세상 속에서 나는 우직하게 내 길을 걷고 있는 것일까요?
오늘 우리들의 삶이 이리도 어지럽고 위태하고 허전한 것은 많은 이들이 동시에 동서로 가려 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내가 가야 할 길을 정하고 등져야 할 것을 등진 채 묵묵히 자기의 길을 걷는 이들이 많아질 때, 이 세상은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뿔보다는 뿌리를 곱게 보듬는 손길이 그립습니다.
<한희철 목사>
아무리 맘이 앞선다 해도 몸이 허락하지를 않습니다. 끝내 고집을 부리면 가랑이가 찢어지고 말 것입니다.
만약 동쪽이 내 길이라면 서쪽을 등져야 바라볼 수 있습니다. 서쪽을 등지지 않으면 내 길을 바라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고 보면 내가 내 길을 걷는다 함은, 매순간 등질 것을 등지고 있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말은 어렵고 혹 복잡할지 몰라도 생각하면 이 또한 지당한 일인데도 동시에 동서로 가려는 삶을 살 때가 있으니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이 자명한 모순을 전혀 느끼지 못할 때가 있으니 몸보다도 더 무딘 것이 마음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말에‘뿔’과 ‘뿌리’는 같은 어원을 가진 말이라고 합니다. 위로 솟아오른 '뿔'과 땅속으로 뻗은 ‘뿌리’, 서로 지향하는 방향이 반대인 두 단어가 한 어원에서 나왔다는 말이 뜻밖입니다.
두 말이 한 어원에서 나왔다 함은 그 근본은 같다는 것, 결국은 둘이 무관할 수가 없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한결같이‘뿔’을 ○○○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누가 더 높은가, 누가 더 빠른가, 누가 더 화려한가, 그것이 삶의 유일한 목표처럼 되었고, 그것이 성공의 척도처럼 자리를 잡았습니다.
짧은 기간에 더 높은 뿔의 자리로 오르는 것은 능력의 척도가 되었습니다. 더 높이, 더 빠르게, 더 화려해질 수만 있다면 어떤 수단과 방법을 택하든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친구도, 신의도, 양심도, 염치도, 신앙도 경우에 따라서는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것들은 '토끼의 간'처럼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일 뿐입니다. 제한속도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은 아우토반을 브레이크가 고장난 차를 몰고 질주하는 형국이 되어 버렸습니다.
나무는 정직해서 위로 자라난 높이만큼 아래로 뿌리를 뻗는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은 바람에게 진다고 합니다.
곳곳에서 흔하게 눈에 띄는 민들레조차도 땅속에서 물을 찾을 수가 없을 땐 스스로 자라기를 멈춘다고 합니다. 아무리 뿌리를 뻗어도 물기를 찾지 못하면 위로 자라는 것을 멈추는데, 그렇지 않으면 결국은 모두가 말라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뿌리에 대한 관심은 사라지고 뿔을 ○○○는데 마음을 빼앗긴 세태 속에서 과연 우리의 삶은 자유로운 것일까요?
쥐가 나는 줄도 모르고 까치발을 하고 키 자랑을 하는 세상 속에서 나는 우직하게 내 길을 걷고 있는 것일까요?
오늘 우리들의 삶이 이리도 어지럽고 위태하고 허전한 것은 많은 이들이 동시에 동서로 가려 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내가 가야 할 길을 정하고 등져야 할 것을 등진 채 묵묵히 자기의 길을 걷는 이들이 많아질 때, 이 세상은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뿔보다는 뿌리를 곱게 보듬는 손길이 그립습니다.
<한희철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