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생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달
4월, 생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달
by 운영자 2013.04.25
<엄란숙>
·시인
·순천문인협회 사무국장
·시와 사람 등단
인디언들의 달력을 만드는 방식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그들은 달력을 만들 때 계절의 미묘한 변화나 그 계절만이 주는 특별한 느낌을 놓치지 않았다. 즉 마음의 움직임을 따라가며 그 달의 명칭을 정했던 것이다.
예를 들면 3월을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달’, ‘한결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달’이라고 부르거나 4월을 ‘머리맡에 씨앗을 두고 자는 달’이라 정했으며 7월은 ‘열매가 빛을 저장하는 달’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로 불렀다 한다.
이러한 명칭들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인디언들이 마음의 움직임과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들에 대해 얼마나 세심하게 반응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12월을 ‘무소유의 달’이라고 불렀다는 기록을 읽었을 때는 감탄사가 저절로 굴러 나왔다.
인디언들은 바깥의 외부 세계에만 눈길을 준 것이 아니라 내면을 응시하면서 그 안에 감추어진 것을 찾아내는 지혜로운 눈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또 인디언들은 사람의 이름을 정할 때에도 그 사람의 성격이나 특징으로 이름을 지었다 한다.
아마도 그들은 부족 생활을 했으므로 소수였던 부족의 개성이나 성격을 이해하는 정도가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이해를 바탕으로 지은 이름을 불러주고 기억하는 것은 무척 의미가 깊었을 듯싶다.
비를 몹시 좋아했던 한 인디언이 있었다. 비를 유난히 좋아하던 그 인디언은 ‘빗속을 달려’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그는 ‘빗속을 달려’라는 이름처럼 늘 비만 오면 소리를 지르며 들판을 달렸다.
그래서 어디서든 그의 고함 소리가 시작되면 비가 온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징후처럼 갑작스러운 폭우가 쏟아졌고 ‘빗속을 달려’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소리를 지르며 들판을 달려 나갔다.
그리곤 폭우 속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가족들은 몇 날 며칠을 기다렸지만 그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한다.
이 이야기를 읽다보면 누군가를 부른다는 것은 단순한 호칭일 뿐 아니라 그의 영혼을 부르는 것 같기도 하다.
김춘수 시인은 ‘꽃’이라는 시에서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리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라고 노래했었다. 이렇게 누군가를 호명한다는 것, 그것은 무의미함을 벗어난 진실함이 담긴 소중한 관계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나는 오늘도 많은 것들을 호명했었다. 책장 앞에서 읽고 싶은 시집의 제목을 중얼거리며 책을 찾기도 했고, 전화기 너머로 보고 싶었던 이들의 이름과 애칭을 부르기도 했다. 수업 시간엔 사랑스러운 아이들의 이름을 몇 번씩 불러주었다.
문득 오늘 4월을 인디언들의 방식으로 이름 붙여보고 싶어진다.
4월, 생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