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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씨(裵氏)네 개 이야기

배씨(裵氏)네 개 이야기

by 운영자 2013.04.30

순이, 옥이, 나리. 누가 이름을 지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지금 생각해도 개 이름치고 상당히 인간적(?)입니다.

먹다 남은 뼈다귀를 땅속 깊이 묻어두곤 했던 순이, 하도 여러 차례 새끼를 이어 낳더니 빈혈로 쓰러져 급히 안고 달려가 링거를 맞혔던 옥이, 성이 ‘개’씨라고 가끔 개나리라고도 불렀던 나리. 그리운 녀석들입니다.

결혼 후 아파트 생활에 아이들이 어리다보니 개를 기를 엄두조차 내지 못했지만 늘 가슴 속에는 개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고 다른 집 개들을 보며 부러워하기만 20년이었습니다.

간절한 마음 반대편에는 빈집에 홀로 놔둘 것이 걱정이었고, 살뜰하게 잘 돌볼 수 있을지 영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결심을 했습니다. 처음부터 잘 할 수는 없는 일, 정성을 다해 돌보고 하나하나 열심히 배워나가면 되지 않을까.

다른 집에서도 다들 잘 기르는데 진심을 가지면 통하지 않을까.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우리도 잘 기를 수 있을 거야!

동네방네 소문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초보이니 좀 순하고 어렸으면 좋겠다고, 사정이 생겨 기르지 못하게 된 강아지가 있으면 맡겨달라고 여기저기 부탁하기 여러 날. 몇 다리 건너, 딸이 유학을 떠나는 바람에 급히 새 주인을 찾는다는 소식이 날아왔습니다.

나이는 5개월, 암컷, 코가 납작하고 털이 긴 ‘시추’종이라는 이야기만 듣고 달려가니 첫 만남에서도 마냥 꼬리를 흔들며 반가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보름 전에 ‘비비’가 저희 집에 왔습니다. 마치 하늘에서 강아지가 뚝 떨어진 것 같았습니다.

주인과 갑자기 헤어져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텐데도 순하게 누구에게나 잘 안기고 명랑하게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새집 탐색에 여념이 없습니다.

정해진 장소 아닌 곳에 가끔 용변을 보기도 하지만 그래도 처음치고는 고맙게도 아주 잘하고 있습니다.

식구들의 생활도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마루 한쪽 편에 강아지 물건들이 자리를 잡았고 하루 종일 사람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덕에 심심할 새가 없습니다.

빈집에 혼자 있는 게 안쓰러워 아침에 일어나면 서로 나가고 들어오는 시간을 확인하며 일정 조정부터 합니다.

특히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제게 좋은 말동무가 생겼습니다.

비록 사람 말을 주고받지는 못하지만 말갛고 동그란 눈으로, 꼬리로, 털북숭이 발로 말합니다.

더 늦기 전에 이름을 바꾸고 싶다던 아이들이 며칠 고민을 하더니 작명을 했습니다. 배씨(裵氏)네 집 개라고 ‘배개’, 잘 때 베고 자는 ‘베개’로도 들립니다.

낯선 새 이름으로 불러도 반갑게 꼬리치며 달려오는 배개, 어리고 여린 생명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을 내려놓지 않고 앞으로 오래도록 건강하고 사이좋게 살겠습니다.

<유경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