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품은 우주다
엄마의 품은 우주다
by 운영자 2013.05.03
엄마의 품은 알집이다. 정진규 시인은 연작시 ‘아, 둥글구나 -알 34’에서 ‘엄마의 가슴은 무한한 사랑을 품는 우주의 원형을 닮은 알집처럼 둥글다’고 노래한다.
걸음마를 시작한 손자에게 할아버지는 초콜릿을, 할머니는 바나나를 들고 유혹하지만 ‘풀밭을 되똥되똥 달려’온 아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잠시 바라봤을 뿐 결국 빈손인 엄마 품으로 뛰어든다.
아이에겐 초콜릿이나 바나나 보다 자신을 품고 키워 준 엄마의 품이 더 좋다.
첫돌이 지나면 엄마 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한다. 며느리가 출산휴가와 아이 양육으로 2년 가까이 직장을 비웠으나 회사에서 출근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고심 끝에 “할머니가 손자를 키워주면 안 되겠느냐”고 제의해 왔다.
아이 키우기가 얼마나 힘든지 뻔히 알면서도 거절할 수 없었다. 3년 간 함께 살다가 살림을 나간 형편이라 여건은 더 어렵다.
한 집에 산다면 유아원에 보냈다가 데리고 와 퇴근 뒤에라도 엄마 품에 안길 수 있지만 주말이 돼서야 상봉하게 되니 엄마도, 아이도 못할 노릇이다.
그렇다고 나 몰라라 할 수도 없다. 자녀 한 명을 대학 졸업할 때까지 키우려면 3억 원 넘게 든다고 하지 않는가. 며느리에게 아이 키우며 살림만 하라고 강요할 수도 없다.
맞벌이를 해야 아이를 제대로 키울 형편이 되는 게 현실이다. 궁리 끝에 손자가 엄마와 떨어져 있을 수 있는지 데려와 보라고 했다. 손자를 맡긴 아들 내외가 강원도로 1박2일 여행을 떠났다.
손자를 안고 근린공원 어린이놀이터에 나가 유아용 그네를 태웠다. 처음 타보는 그네가 신기한 듯 처음엔 웃더니 점차 시무룩해진다. 엄마를 생각하는 눈치다.
집에 돌아와 손가락을 빨며 곤히 자더니 초저녁에 깨어나 울기 시작한다. 엄마를 찾으며 자지러질듯 운다. 어르고 달래며 먹을 것을 줘도 소용없다.
병이라도 날까봐 안절부절, 속수무책이다. 결국 아들 내외에게 SOS를 쳤고, 이른 새벽 귀가해 엄마 품에 안겼다. 손자를 키우려는 생각은 봄밤의 짧은 꿈으로 끝났다.
아이를 맡아 키우려면 엄마 얼굴을 모르는 영유아 때부터 길러야 문제가 없다는 게 경험자들의 조언이다.
어느 가정이나 아이 키우는 문제로 고민한다.
손주 보다가 병이 났다거나, 노후의 여유를 차압당하는 불만의 소리도 들린다. 영유아원에 맡기려 해도 “울며 징징댄다”며 어린이를 때려 사회문제가 된 일부 보육원 교사의 빗나간 행동도 신경 쓰인다.
‘손주 돌보미 수당제’ 도입도 좋고 영유아비 지원도 좋지만, 엄마가 아이를 맘 놓고 키우는 세상이 됐으면 참 좋겠다. 엄마는 아이의 우주니까.
<이규섭 시인>
걸음마를 시작한 손자에게 할아버지는 초콜릿을, 할머니는 바나나를 들고 유혹하지만 ‘풀밭을 되똥되똥 달려’온 아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잠시 바라봤을 뿐 결국 빈손인 엄마 품으로 뛰어든다.
아이에겐 초콜릿이나 바나나 보다 자신을 품고 키워 준 엄마의 품이 더 좋다.
첫돌이 지나면 엄마 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한다. 며느리가 출산휴가와 아이 양육으로 2년 가까이 직장을 비웠으나 회사에서 출근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고심 끝에 “할머니가 손자를 키워주면 안 되겠느냐”고 제의해 왔다.
아이 키우기가 얼마나 힘든지 뻔히 알면서도 거절할 수 없었다. 3년 간 함께 살다가 살림을 나간 형편이라 여건은 더 어렵다.
한 집에 산다면 유아원에 보냈다가 데리고 와 퇴근 뒤에라도 엄마 품에 안길 수 있지만 주말이 돼서야 상봉하게 되니 엄마도, 아이도 못할 노릇이다.
그렇다고 나 몰라라 할 수도 없다. 자녀 한 명을 대학 졸업할 때까지 키우려면 3억 원 넘게 든다고 하지 않는가. 며느리에게 아이 키우며 살림만 하라고 강요할 수도 없다.
맞벌이를 해야 아이를 제대로 키울 형편이 되는 게 현실이다. 궁리 끝에 손자가 엄마와 떨어져 있을 수 있는지 데려와 보라고 했다. 손자를 맡긴 아들 내외가 강원도로 1박2일 여행을 떠났다.
손자를 안고 근린공원 어린이놀이터에 나가 유아용 그네를 태웠다. 처음 타보는 그네가 신기한 듯 처음엔 웃더니 점차 시무룩해진다. 엄마를 생각하는 눈치다.
집에 돌아와 손가락을 빨며 곤히 자더니 초저녁에 깨어나 울기 시작한다. 엄마를 찾으며 자지러질듯 운다. 어르고 달래며 먹을 것을 줘도 소용없다.
병이라도 날까봐 안절부절, 속수무책이다. 결국 아들 내외에게 SOS를 쳤고, 이른 새벽 귀가해 엄마 품에 안겼다. 손자를 키우려는 생각은 봄밤의 짧은 꿈으로 끝났다.
아이를 맡아 키우려면 엄마 얼굴을 모르는 영유아 때부터 길러야 문제가 없다는 게 경험자들의 조언이다.
어느 가정이나 아이 키우는 문제로 고민한다.
손주 보다가 병이 났다거나, 노후의 여유를 차압당하는 불만의 소리도 들린다. 영유아원에 맡기려 해도 “울며 징징댄다”며 어린이를 때려 사회문제가 된 일부 보육원 교사의 빗나간 행동도 신경 쓰인다.
‘손주 돌보미 수당제’ 도입도 좋고 영유아비 지원도 좋지만, 엄마가 아이를 맘 놓고 키우는 세상이 됐으면 참 좋겠다. 엄마는 아이의 우주니까.
<이규섭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