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by 운영자 2013.05.10
<유순재>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전남지역본부
사회복지사
불필요한 건 알지만 차마 버릴 수 없어 꾸역꾸역 챙겨 넣은 이삿짐들. 틈날 때마다 이것들을 하나씩 풀어내는데, 한 시간도 안 걸릴 정리에 반나절이 넘기는 건 예사이다. 물건 하나하나에 새겨진 사연까지 곱씹느라….
10년 전 똑같은 날짜에 받았던 편지를 발견하고는 몇 년 동안 연락 없던 송신인에게 연락을 취해보기도 하고, 낡은 지갑 속에서 발견한 납부금액 0원이 찍힌 전액장학금 대학원 납부금고지서도 고이 모셔두고.
지난 글에 등장한 위탁가정이 필요한 경미 이야기를 기억하시는지 모르겠다.
수감된 아빠를 대신해 경미를 양육해줄 위탁가정은 어렵지 않게 구해졌다.
애교 많은 경미와 정 많은 위탁부모님의 동거가 시작되고 위탁 초기의 알콩달콩함이 한두 달쯤 이어지고 난 후부터 시작되는 진짜 적응을 위한 신경전들.
서로 다른 가족문화를 가진 이들이 만나 한 가정을 이루는 것은 신혼부부들이 겪는 이상의 진통으로 다가온다.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했기에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경미의 자유분방한 생활습관과 부모의 역할과 가정의 규율을 지켜가려는 위탁부모님의 양육방식은 누구의 잘잘못을 탓할 것도 없이 당연한 충돌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애교 많던 아이는 고집불통 말 안 듣는 문제아가 되기도 하고 배려 깊던 위탁부모는 안 된다는 소리만 하는 엄한 양육자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이런 과정들을 겪고 있자면 위탁부모님도 사회복지사도 차츰 지쳐가고 내가 잘하고 있는지 회의감이 밀려들고 이겨내지 못한 회의감은 좌절감으로 남아 생채기를 남겨놓는다.
위탁가정이라면 누구나 예외 없이 겪게 되는 이런 혼란들은 비단 위탁가정만의 이야기는 아닐 듯하다.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라면 누구나 해봤을 고민들이 아닌가.
그럼에도 사회복지현장에서 일어나는 이런 고민들은 반드시 해결이 되어야만 할 것 같은 막중한 책임감에 사회복지사도 위탁부모도 자신의 무능함에 절망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들이 느끼는 무능함의 근거는 대체로 주변의 시선들에서 비롯된다.
“좋은 일 하시네요”라는 표면적 상냥함 뒤에 감춰진 ‘자기 자식이나 잘 키우지 남의 자식 데려다가 뭐하는 거야’ ‘애가 왜 우는 거지? 학대 하는 거 아냐?’ ‘돈 벌려고 저러는 거겠지’라는 이웃들의 속마음.
“그냥 시설 보내지 무슨 가정위탁이야. 저러다 아이가 사고나거나 친부모 민원 발생하면 아휴 골치 아파. 위탁지원금이 잘 쓰이는지 관리는 잘하고 있는 거야?”라는 관련자들의 반응.
이런 시선들이 주는 중압감은 그렇지 않아도 아이의 부적응 문제로 무력감에 빠진 위탁부모의 양육포기 선언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기다렸다는 듯이 결국 안하느니만 못한 결과가 되지 않았느냐고 비난하며 혀를 차는 이들.
전국의 17개 가정위탁지원센터에서 근무하는 100여명의 사회복사 누구도 예외 없이 겪게 되는 딜레마.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하느냐 말아야하느냐….
필자의 사회복지 초년병 시절 만났던 아버지와의 몇해 전 통화내용 속에서 답을 찾아본다.
“선생님이 저와 아이를 살려주셨습니다. 아이 위탁되고 얼마 안 있어 위탁가정이 변경될 때는 정말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지만 아이와 함께해준 가정들에게 정말 감사합니다. 그 은혜 생각해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도 고흥(마지막 위탁가정이 있던)에 다녀왔어요.”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서로를 향한 긍정적인 변화를 도모하는 사회복지현장에서 사회복지사 한사람이 가진 기술과 정보는 그가 함께하는 수십 수백명의 대상자들에게 고스란히 영향을 끼치기에 더 많은 전문지식을 쌓고자 시작했던 대학원 진학은 나에게 많은 상처들을 남기고 뭘 배웠나 싶을지 모를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지만 이삿짐 속에서 발견한 고지서 한 장만으로도 훈훈하게 마무리되는 것처럼 위탁의 결과가 아닌 과정 속에 겪었던 수많은 인내와 사랑은 아이와 친 가정에 선한 영향력으로 남아있을 것이라 믿는다.
부모가 되고서야 부모님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하는 것처럼 아이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어느 순간 ‘아, 그때 그분들이 나를 이렇게 사랑해주셨구나’ 추억할 수 있는 그 시절의 기억과 친가정에서 볼 수 없었던 가정의 역할, 부모의 역할에 대한 기억들로 힘든 세상을 살아갈 또 다른 에너지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 조그마한 기대로 오늘도 사명감을 무기로 소진을 털고 일어서 묵묵한 실천을 수행하는 이 땅의 모든 위탁부모님들과 사회복지사님들에게 파이팅을 외쳐본다.
그리고 이글을 읽고 계실 여러분들을 향한 간절한 부탁 한마디. “함께 해주세요!”
‘잘하는지 보자’라는 감시와 견제의 눈빛이 아니라 더 잘할 수 있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당신의 마음이 한 아이의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할 수 있기에, ‘한 아이를 키우려면 한 마을이 필요 합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전남지역본부
사회복지사
불필요한 건 알지만 차마 버릴 수 없어 꾸역꾸역 챙겨 넣은 이삿짐들. 틈날 때마다 이것들을 하나씩 풀어내는데, 한 시간도 안 걸릴 정리에 반나절이 넘기는 건 예사이다. 물건 하나하나에 새겨진 사연까지 곱씹느라….
10년 전 똑같은 날짜에 받았던 편지를 발견하고는 몇 년 동안 연락 없던 송신인에게 연락을 취해보기도 하고, 낡은 지갑 속에서 발견한 납부금액 0원이 찍힌 전액장학금 대학원 납부금고지서도 고이 모셔두고.
지난 글에 등장한 위탁가정이 필요한 경미 이야기를 기억하시는지 모르겠다.
수감된 아빠를 대신해 경미를 양육해줄 위탁가정은 어렵지 않게 구해졌다.
애교 많은 경미와 정 많은 위탁부모님의 동거가 시작되고 위탁 초기의 알콩달콩함이 한두 달쯤 이어지고 난 후부터 시작되는 진짜 적응을 위한 신경전들.
서로 다른 가족문화를 가진 이들이 만나 한 가정을 이루는 것은 신혼부부들이 겪는 이상의 진통으로 다가온다.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했기에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경미의 자유분방한 생활습관과 부모의 역할과 가정의 규율을 지켜가려는 위탁부모님의 양육방식은 누구의 잘잘못을 탓할 것도 없이 당연한 충돌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애교 많던 아이는 고집불통 말 안 듣는 문제아가 되기도 하고 배려 깊던 위탁부모는 안 된다는 소리만 하는 엄한 양육자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이런 과정들을 겪고 있자면 위탁부모님도 사회복지사도 차츰 지쳐가고 내가 잘하고 있는지 회의감이 밀려들고 이겨내지 못한 회의감은 좌절감으로 남아 생채기를 남겨놓는다.
위탁가정이라면 누구나 예외 없이 겪게 되는 이런 혼란들은 비단 위탁가정만의 이야기는 아닐 듯하다.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라면 누구나 해봤을 고민들이 아닌가.
그럼에도 사회복지현장에서 일어나는 이런 고민들은 반드시 해결이 되어야만 할 것 같은 막중한 책임감에 사회복지사도 위탁부모도 자신의 무능함에 절망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들이 느끼는 무능함의 근거는 대체로 주변의 시선들에서 비롯된다.
“좋은 일 하시네요”라는 표면적 상냥함 뒤에 감춰진 ‘자기 자식이나 잘 키우지 남의 자식 데려다가 뭐하는 거야’ ‘애가 왜 우는 거지? 학대 하는 거 아냐?’ ‘돈 벌려고 저러는 거겠지’라는 이웃들의 속마음.
“그냥 시설 보내지 무슨 가정위탁이야. 저러다 아이가 사고나거나 친부모 민원 발생하면 아휴 골치 아파. 위탁지원금이 잘 쓰이는지 관리는 잘하고 있는 거야?”라는 관련자들의 반응.
이런 시선들이 주는 중압감은 그렇지 않아도 아이의 부적응 문제로 무력감에 빠진 위탁부모의 양육포기 선언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기다렸다는 듯이 결국 안하느니만 못한 결과가 되지 않았느냐고 비난하며 혀를 차는 이들.
전국의 17개 가정위탁지원센터에서 근무하는 100여명의 사회복사 누구도 예외 없이 겪게 되는 딜레마.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하느냐 말아야하느냐….
필자의 사회복지 초년병 시절 만났던 아버지와의 몇해 전 통화내용 속에서 답을 찾아본다.
“선생님이 저와 아이를 살려주셨습니다. 아이 위탁되고 얼마 안 있어 위탁가정이 변경될 때는 정말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지만 아이와 함께해준 가정들에게 정말 감사합니다. 그 은혜 생각해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도 고흥(마지막 위탁가정이 있던)에 다녀왔어요.”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서로를 향한 긍정적인 변화를 도모하는 사회복지현장에서 사회복지사 한사람이 가진 기술과 정보는 그가 함께하는 수십 수백명의 대상자들에게 고스란히 영향을 끼치기에 더 많은 전문지식을 쌓고자 시작했던 대학원 진학은 나에게 많은 상처들을 남기고 뭘 배웠나 싶을지 모를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지만 이삿짐 속에서 발견한 고지서 한 장만으로도 훈훈하게 마무리되는 것처럼 위탁의 결과가 아닌 과정 속에 겪었던 수많은 인내와 사랑은 아이와 친 가정에 선한 영향력으로 남아있을 것이라 믿는다.
부모가 되고서야 부모님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하는 것처럼 아이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어느 순간 ‘아, 그때 그분들이 나를 이렇게 사랑해주셨구나’ 추억할 수 있는 그 시절의 기억과 친가정에서 볼 수 없었던 가정의 역할, 부모의 역할에 대한 기억들로 힘든 세상을 살아갈 또 다른 에너지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 조그마한 기대로 오늘도 사명감을 무기로 소진을 털고 일어서 묵묵한 실천을 수행하는 이 땅의 모든 위탁부모님들과 사회복지사님들에게 파이팅을 외쳐본다.
그리고 이글을 읽고 계실 여러분들을 향한 간절한 부탁 한마디. “함께 해주세요!”
‘잘하는지 보자’라는 감시와 견제의 눈빛이 아니라 더 잘할 수 있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당신의 마음이 한 아이의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할 수 있기에, ‘한 아이를 키우려면 한 마을이 필요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