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밥 먹는 까치
쌀밥 먹는 까치
by 운영자 2013.05.13
내가 사는 대구에는 현재 갈잎 키 큰 이팝나무의 꽃이 한창이다. 이팝나무는 입하 때 피거나 꽃이 팝콘처럼 보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팝나무의 꽃은 멀리서 보면 그릇에 하얀 쌀밥을 담아놓은 듯 보인다. 그래서 보릿고개 시절 사람들은 이팝나무의 꽃을 ‘쌀밥’이라 생각했다.
따가운 봄볕에서 일을 하다가 고개를 들어 이팝나무의 꽃이 눈에 꽂히면, 굶주린 배는 더욱 허기를 느낀다. 그러나 구중궁궐의 이씨 왕조 왕족들은 하얀 쌀밥을 먹으면서 호의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팝나무를 ‘이밥’나무라 부른다.
농민들의 애환이 서린 이팝나무는 전국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지만, 내가 살고 있는 대구시 달성군 옥포면 교항리에는 200-300년 동안 살고 있는 이팝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이처럼 나이가 많은 이팝나무가 군락을 이룬 곳은 많지 않다. 오늘 그곳에 가서 보니 제일 나이가 많은 이팝나무 꼭대기에 까치가 집을 만들어 살고 있었다.
까치가 이팝나무에 집을 만든 것은 쌀밥을 먹기 위해서 일 것이다. 까치인들 왜 쌀밥이 먹고 싶지 않을까. 누구나 쌀밥을 먹고 싶다. 그러나 누구나 쌀밥을 먹을 수는 없다.
쌀밥을 먹기 위해서는 까치처럼 아주 높은 곳에 멋진 집을 만들 수 있어야만 한다. 까치는 지혜롭게도 어떤 나무가 튼튼한지 잘 알고 있다. 까치가 이팝나무 꼭대기에 집을 만들었다는 것은 그 만큼 이팝나무가 튼튼하다는 뜻이다.
이팝나무의 꽃은 멀리서 보는 것과 가까이서 보는 것이 다르다. 이팝나무는 부모인 풀푸레나무를 닮아서 꽃이 하얀 실을 닮았다. 부모보다 꽃의 길이는 짧지만 색깔은 부모보다 더 희다.
그래서 백옥같은 이팝나무의 꽃은 만지기가 두렵다. 하얀 꽃이 쳐다볼 수조차 없을 만큼 눈부시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팝나무는 꽃이 활짝 피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느낌도 상당히 다르다.
고개를 숙여 잎을 통해 꽃을 보면 잎에 가려서 탐스러운 모습을 볼 수 없다. 그만큼 이팝나무의 잎도 작지 않다. 이팝나무의 잎은 부모보다 크지 않지만, 하늘을 향해 피어 있는 꽃을 보호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언덕에 살고 있는 교항리의 이팝나무 군락은 아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위치에 있지만, 농기구와 쓰레기 등으로 주변이 매우 어수선해서 마음이 무척 불편하다.
이팝나무 군락은 이 마을의 문화 상징이지만, 문화를 가꾸는 노력은 부족하다.
이곳의 이팝나무는 마을 사람들의 수호신이지만, 마을이나 지자체의 관심은 상응하지 못하고 있다.
이곳의 간판에는 이팝나무 군락을 생물자원보존림으로 적어두었지만, 보존 상황은 좋지 않다.
이팝나무가 매년 아름다운 꽃을 피우듯이, 이곳의 이팝나무의 가치는 끊임없는 관심으로 지킬 수 있다.
<강판권 교수>
이팝나무의 꽃은 멀리서 보면 그릇에 하얀 쌀밥을 담아놓은 듯 보인다. 그래서 보릿고개 시절 사람들은 이팝나무의 꽃을 ‘쌀밥’이라 생각했다.
따가운 봄볕에서 일을 하다가 고개를 들어 이팝나무의 꽃이 눈에 꽂히면, 굶주린 배는 더욱 허기를 느낀다. 그러나 구중궁궐의 이씨 왕조 왕족들은 하얀 쌀밥을 먹으면서 호의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팝나무를 ‘이밥’나무라 부른다.
농민들의 애환이 서린 이팝나무는 전국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지만, 내가 살고 있는 대구시 달성군 옥포면 교항리에는 200-300년 동안 살고 있는 이팝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이처럼 나이가 많은 이팝나무가 군락을 이룬 곳은 많지 않다. 오늘 그곳에 가서 보니 제일 나이가 많은 이팝나무 꼭대기에 까치가 집을 만들어 살고 있었다.
까치가 이팝나무에 집을 만든 것은 쌀밥을 먹기 위해서 일 것이다. 까치인들 왜 쌀밥이 먹고 싶지 않을까. 누구나 쌀밥을 먹고 싶다. 그러나 누구나 쌀밥을 먹을 수는 없다.
쌀밥을 먹기 위해서는 까치처럼 아주 높은 곳에 멋진 집을 만들 수 있어야만 한다. 까치는 지혜롭게도 어떤 나무가 튼튼한지 잘 알고 있다. 까치가 이팝나무 꼭대기에 집을 만들었다는 것은 그 만큼 이팝나무가 튼튼하다는 뜻이다.
이팝나무의 꽃은 멀리서 보는 것과 가까이서 보는 것이 다르다. 이팝나무는 부모인 풀푸레나무를 닮아서 꽃이 하얀 실을 닮았다. 부모보다 꽃의 길이는 짧지만 색깔은 부모보다 더 희다.
그래서 백옥같은 이팝나무의 꽃은 만지기가 두렵다. 하얀 꽃이 쳐다볼 수조차 없을 만큼 눈부시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팝나무는 꽃이 활짝 피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느낌도 상당히 다르다.
고개를 숙여 잎을 통해 꽃을 보면 잎에 가려서 탐스러운 모습을 볼 수 없다. 그만큼 이팝나무의 잎도 작지 않다. 이팝나무의 잎은 부모보다 크지 않지만, 하늘을 향해 피어 있는 꽃을 보호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언덕에 살고 있는 교항리의 이팝나무 군락은 아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위치에 있지만, 농기구와 쓰레기 등으로 주변이 매우 어수선해서 마음이 무척 불편하다.
이팝나무 군락은 이 마을의 문화 상징이지만, 문화를 가꾸는 노력은 부족하다.
이곳의 이팝나무는 마을 사람들의 수호신이지만, 마을이나 지자체의 관심은 상응하지 못하고 있다.
이곳의 간판에는 이팝나무 군락을 생물자원보존림으로 적어두었지만, 보존 상황은 좋지 않다.
이팝나무가 매년 아름다운 꽃을 피우듯이, 이곳의 이팝나무의 가치는 끊임없는 관심으로 지킬 수 있다.
<강판권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