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진 유리그릇
깨어진 유리그릇
by 운영자 2013.05.14
수첩의 연락처 목록에서뿐만이 아니라 머릿속에서조차 오래전에 지워버린 누군가의 이름이 불현듯 스마트폰 메신저 창에 떴습니다.
놀람을 넘어 기술의 발전이 두렵기까지 합니다.
저와는 달리 그쪽은 추억의 한 자락이라도 나누고 싶었던지 제게 글을 남겼습니다.
“나 OO야. 건강히 잘 지내니? 어느 토요일 이후로 십여 년이 지났구나. 보고 싶다. 한 번 연락 줄래? 메신저에 네가 친구로 떴는데 번호도 모르고 해서 내 연락처 남긴다. 꼭 전화주기 바란다.”
사람은 정말 자기중심적이어서 십여 년 전 자신의 행동이 오랜 우정을 어떻게 흉하게 일그러뜨렸는지, 또 한 기관에서 열심히 일하던 중견직원에게 어떤 상처를 남겼는지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아니면 자신에게 편리하게 마음대로 요약정리해서 저장해 두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주 친한 여고 동창이었지만 결혼 후에는 각자 아이들 기르면서 그는 남편의 근무지인 외국에 가서 사느라고 또 저는 저대로 재취업해 적응하느라고 경황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 그가 살고 있는 동네 옆 구립노인복지관에 근무하게 돼 가끔 점심을 먹곤 했습니다.
어느 날 중학생 아들의 자원봉사활동을 의논하기에 복지관의 등록 및 교육 절차를 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오해가 생겼습니다. 그는 엄마의 등록과 교육 시간까지 아이의 봉사활동 실적이 되는 줄 알았던 것이지요.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그 생각이 오해임은 물론 옳지 못한 것은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설명을 제대로 하지 못한 담당 직원의 실수라며 강하게 항의를 했고, 결국 부서장인 제가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해진 절차에 따라 진행하는 일이지만 그래도 혹시 직원에게 실수가 있었다면 사과하겠노라고 했지만 그는 끝내 마음을 풀지 않았고 구청에 민원을 제기하고야 말았습니다.
메신저 글에 나오는 ‘어느 토요일’은 이런 사연을 품고 있습니다.
그 후 민원제기에 이르게 된 원인 조사와 소명서 제출 등 그 직원과 저, 제 상사까지 오래도록 시달리고 나서야 사건은 마무리 됐습니다.
그러나 그 상처는 깊어서 그 직원은 퇴직을 했고, 오랜 친구의 민원과 그에 따른 후배의 퇴직은 제게도 무척 아프게 남았습니다.
묵묵부답인 제게 자기 사진 한 장과 “기다리고 있는데…”라는 글을 다시 보내왔습니다. 물론 앞으로의 일이야 장담할 수 없지만, 아무튼 아직 저는 그와 관계를 다시 맺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습니다.
사람 사이란 세상 그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을 만큼 질기기도 하지만 반대로 유리그릇 같아서 조금만 삐끗하면 깨지기 일쑤입니다.
혹시라도 저 역시 너그럽지 못한 마음으로 예쁜 유리그릇을 순식간에 깨뜨리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봅니다.
<유경작가>
놀람을 넘어 기술의 발전이 두렵기까지 합니다.
저와는 달리 그쪽은 추억의 한 자락이라도 나누고 싶었던지 제게 글을 남겼습니다.
“나 OO야. 건강히 잘 지내니? 어느 토요일 이후로 십여 년이 지났구나. 보고 싶다. 한 번 연락 줄래? 메신저에 네가 친구로 떴는데 번호도 모르고 해서 내 연락처 남긴다. 꼭 전화주기 바란다.”
사람은 정말 자기중심적이어서 십여 년 전 자신의 행동이 오랜 우정을 어떻게 흉하게 일그러뜨렸는지, 또 한 기관에서 열심히 일하던 중견직원에게 어떤 상처를 남겼는지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아니면 자신에게 편리하게 마음대로 요약정리해서 저장해 두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주 친한 여고 동창이었지만 결혼 후에는 각자 아이들 기르면서 그는 남편의 근무지인 외국에 가서 사느라고 또 저는 저대로 재취업해 적응하느라고 경황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 그가 살고 있는 동네 옆 구립노인복지관에 근무하게 돼 가끔 점심을 먹곤 했습니다.
어느 날 중학생 아들의 자원봉사활동을 의논하기에 복지관의 등록 및 교육 절차를 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오해가 생겼습니다. 그는 엄마의 등록과 교육 시간까지 아이의 봉사활동 실적이 되는 줄 알았던 것이지요.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그 생각이 오해임은 물론 옳지 못한 것은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설명을 제대로 하지 못한 담당 직원의 실수라며 강하게 항의를 했고, 결국 부서장인 제가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해진 절차에 따라 진행하는 일이지만 그래도 혹시 직원에게 실수가 있었다면 사과하겠노라고 했지만 그는 끝내 마음을 풀지 않았고 구청에 민원을 제기하고야 말았습니다.
메신저 글에 나오는 ‘어느 토요일’은 이런 사연을 품고 있습니다.
그 후 민원제기에 이르게 된 원인 조사와 소명서 제출 등 그 직원과 저, 제 상사까지 오래도록 시달리고 나서야 사건은 마무리 됐습니다.
그러나 그 상처는 깊어서 그 직원은 퇴직을 했고, 오랜 친구의 민원과 그에 따른 후배의 퇴직은 제게도 무척 아프게 남았습니다.
묵묵부답인 제게 자기 사진 한 장과 “기다리고 있는데…”라는 글을 다시 보내왔습니다. 물론 앞으로의 일이야 장담할 수 없지만, 아무튼 아직 저는 그와 관계를 다시 맺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습니다.
사람 사이란 세상 그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을 만큼 질기기도 하지만 반대로 유리그릇 같아서 조금만 삐끗하면 깨지기 일쑤입니다.
혹시라도 저 역시 너그럽지 못한 마음으로 예쁜 유리그릇을 순식간에 깨뜨리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봅니다.
<유경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