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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없이 자기의 자리를 지키는 것

말없이 자기의 자리를 지키는 것

by 운영자 2013.05.15

아름답게 생긴 아가씨가 눈앞에서 환히 웃는데, 이 사이에 빨간 고춧가루가 끼어 있다면 방금 전에 받았던 느낌은 사뭇 달라질 것입니다.

멋있어 보이는 남자의 소매 깃에 밥풀이 서너 개 달라붙어 있어도 마찬가지겠지요. 어머니가 막 만든 깍두기를 붉게 두르고 있는 고춧가루야 군침이 돌게 하고, 막 지어 밥상 위에 올라온 밥그릇에 담긴 기름진 밥은 밥맛을 돌게 만들지만 말이지요.

우리 몸은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여러 기관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 몸에 필요한 산소를 공급하고 몸에서 생긴 이산화탄소를 밖으로 내보내는 호흡기관이 있는데, 코와 기관지와 폐 등이 이에 해당이 됩니다.

소화 기관은 우리 몸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기 위해 음식물을 작게 분해하여 영양소를 흡수하는데, 입과 식도와 위와 십이지장, 작은창자, 큰창자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순환 기관은 몸에 필요한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하기 위해 혈관을 통해 혈액을 순환시키고 노폐물을 운반하는 역할을 맡는데, 심장, 혈관, 혈액 등이 해당됩니다.

우리 몸에서 생긴 노폐물을 걸러 오줌과 땀의 형태로 몸 밖으로 내보내는 배설 기관에는 신장(콩팥), 방광, 땀샘 등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신경계가 있어 외부의 자극을 감각 기관을 통해 뇌에 전달하고 판단하여 결정한 것을 다시 운동 기관에 전달하는 일을 맡고 있고, 뼈는 우리 몸의 골격을 이루어 몸을 지탱하면서 몸 속의 여러 기관을 보호하고 있고, 근육은 뼈에 연결되어 있어 뼈가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가히 소우주라 여겨질 만큼 많은 기관이 있지만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기관들은 서로 다투지를 않습니다. 서로 자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우기지도 않습니다. 나와 역할이 다르다고 갈등을 일으키지도 않습니다.

크기가 작다고 무시를 하는 것도 아닙니다. 남이 보지 않는다고 자기 역할을 등한히 하지도 않습니다.

어디가 아프다는 것은 우리 몸의 어딘가가 자기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증거입니다. 자기 역할을 충실히 감당할 때는 있는 줄도 몰랐던 부분이, 몸이 아프면 대번 관심의 중심이 됩니다. 온 기관이 아픈 곳을 향합니다.

이가 아프면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면서 온몸이 끙끙 앓습니다. 새끼발가락이 아파도 온몸의 속도는 더뎌집니다. 아픈 이를 내버려둔 채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아픈 새끼발가락을 무시하고 운동을 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몸이 건강하다는 것은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모든 지체가 자기 역할에 충실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군가 티를 내어 자기 존재를 드러낸다는 것은 몸이 아프다는 반증이기도 하고요.

어디 그것이 우리의 몸 뿐이겠습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도 마찬가지겠지요. 각자가 자기 자리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는 것, 그것이 우리 사회가 건강한 사회가 되는 길이겠지요.

말없이 자기의 자리를 지키는 것, 그것은 아름다움이기도 하고요.

<한희철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