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눈부시다!

눈부시다!

by 운영자 2013.05.22

어느새 울창해진 상수리나무의 이파리들은 하늘을 가립니다. 썰렁하게 빈 가지만 남아 휑했던 빈 공간이 어느새 다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뼈대처럼 앙상했던 가지들이 긴 겨울잠을 끝내고 산뜻한 나들이옷으로 갈아입은 듯합니다.

몇 개의 돌계단을 올라선 구석, 한 키 작은 나무가 소담한 꽃을 피웠습니다. 눈여겨보니 겨우 두 송이, 그래도 장하게만 여겨집니다.

이태 전까지만 해도 계단을 꽃그늘로 가득 덮던 수국이었습니다. 계단을 오를 때마다 하얀 꽃잎과 풍성한 꽃 뭉치에서 풍겨나는 향기가 몸과 마음을 물들이던 꽃이었지요.

사람의 어리석은 생각으로 두어 번 자리를 옮기더니 시름시름 시들기 시작했습니다. 꽃도 사람도 함부로 자리를 옮기면 안 되는 법, 결국 그 좋던 수국은 가지만을 남긴 채 죽고 말았습니다.

깊은 꽃그늘이 전해준 즐거움이 컸던 만큼 꽃이 죽은 아쉬움도 컸습니다. 어떻게든 살려보려 다른 가지 다 자르고 남긴 굵은 밑동 부분을 차마 바로 없애지 못하고 그냥 두었는데 이게 웬일, 겨울 지나고 봄 돌아오며 땅속에서 새로운 가지가 돋는 것이었습니다.

가지는 다 죽었지만 뿌리 어딘가엔 생명을 지키고 있었던가 봅니다.

새로 돋은 가지가 한 해 겨울을 용케 나더니 마침내 꽃을 피워낸 것입니다. 새로 돋은 줄기는 죽은 채 남아 있는 밑동보다 아직 키가 작지만 그런데도 마침내 피어나 죽은 가지에 몸을 기대고 핀 꽃무더기, 생명이 얼마나 장한 것인지를 일러주지 싶어 이 봄 어느 꽃보다도 장하게 여겨집니다.

속성수인 느티나무 아래 그늘진 곳에 자리를 잡은 아쉬움 때문이었을까요, 볕 좋은 곳보다 먼저 꽃잎을 떨어뜨린 연산홍이 괜히 애처로운데, 연산홍을 그늘로 덮는 나무 중엔 가지마다 흰 꽃을 피운 나무도 있습니다.

오월의 신부가 입은 흰 드레스처럼 순백의 꽃잎을 맘껏 하늘로 펼치고 있습니다. 지난해 저 나무 아래 개살구를 줍던 사람들의 모습이 기억나 개살구나무로 짐작할 뿐 나무의 이름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나무의 이름을 모르니 꽃의 이름을 알 리는 더욱 없고요.

사방 피어난 꽃 사이로 햇빛과 바람이 지납니다. 나머지의 공간과 시간을 참새의 재잘거림과 아이들 노는 소리가 채웁니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5월의 풍경입니다.

5월은 눈길 닿는 곳마다 “눈부시다!”라는 말이 가득하여 천지사방 눈이 부십니다.

[교차로신문사/ 한희철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