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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지만 나름 행복했던…

아쉽지만 나름 행복했던…

by 운영자 2013.05.23

일주일 전인 석가탄신일 연휴 기간에 14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제주도를 찾았다고 하는데, 저희 식구들은 명함도 못 내민 채 막을 내리고 말았으니 그 계획은 처음부터 무모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남편이 현재 제주도에 근무 중이니 숙소 걱정 없고 마침 결혼기념일도 끼어 있으니 욕심을 내볼 만 했습니다. 결국 여기 저기 청을 넣었고 다행히 한 곳에서 걱정 말고 여행준비를 하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야호!

드디어 짐 쌀 일만 남겨두고 있던 출발 전날 늦은 오후, 장담하던 비행기 표가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뿔싸!

아이도 어른도 낙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도저히 방법이 없는 일. 결국 서로를 위로하며 무엇으로 가족여행을 대체할 것인지 궁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엄마 아빠의 결혼기념일을 그냥 넘기기는 아쉽다며 아이가 서둘러 뮤지컬 표를 예매했고 연휴 기간 중 하루 근처 대학가로 나가 근사한 저녁을 먹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제주의 푸른 바다를 보며 시원한 바람을 쐬려던 계획은 완전히 어긋났지만 세 식구가 나란히 앉아 뮤지컬에 푹 빠졌다 나오니 그 또한 좋았습니다.

사방에 젊은 사람들뿐이었지만 로맨틱한 음식점에서의 식사도 제법 분위기를 즐길만했습니다.

뮤지컬 공연장의 포스터 앞과 음식점 입구에서 기념사진을 찍어주며, 둘 다 손가락 두 개로 브이 자를 그려 결혼 22주년을 증명해야 한다는 아이의 애교에 웃음이 나왔습니다.

결혼사진 속 새파랗게 젊고 날씬했던 신혼부부는 이제 투실투실한 중년이 되어 휴대폰 속에서 웃고 있습니다.

비록 계획했던 여행은 출발조차 하지 못했지만, 22년 동안의 결혼생활이라는 여행은 지금까지 비교적 순항이었던 것 같습니다. 귀밑머리 희끗희끗한 오십대 중반을 함께 넘어가고 있는 남편과 저는 이렇게 또 한 해의 부부 나이테를 더했습니다.

[교차로신문사/ 유경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