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우와 육우 어느 소가 더 불행?
투우와 육우 어느 소가 더 불행?
by 운영자 2013.05.24
“나는 아름다운 정원을 찾아 세상을 헤맸다. 그러다 마침내 발견한 곳이 바로 론다의 하늘 정원이다.” 릴케가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론다는 스페인 남부의 작은 도시다.
피카소는 투우를 보려고, 헤밍웨이는 집필을 하러 그 곳을 자주 찾았다. 론다의 상징인 누에보 다리는 거대한 댐처럼 견고하다.
길이 120m, 높이 98m 다리 난간에 기대어 바라보는 타호 협곡은 오금이 저리도록 아찔하다.
계곡 너머로 펼쳐진 너른 들판의 목가적 풍광은 가슴이 탁 트이고 눈길이 시원해진다. 다리를 경계로 옛날 아랍인이 살던 구시가지와 투우장이 있는 신시가지로 갈린다. 다리 부근 언덕 위의 하얀 집들은 동화 속 요정의 집처럼 아름답다.
누에보 다리는 42년에 걸친 난공사 끝에 1793년 완공됐다. 지금은 관광명소지만 슬픈 역사의 현장이다.
스페인 내전 때는 죄수를 가두는 감옥이었고, 적을 처형하는 곳이었다. 당시 공화파와 프랑코파가 번갈아 마을을 점령했을 때, 적을 두들겨 팬 뒤 협곡으로 던져버렸다니 끔찍한 참극의 현장이다.
스페인 내전을 다룬 헤밍웨이의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도 등장한다. 헤밍웨이가 머물며 집필을 했던 호텔 외벽엔 그의 얼굴이 들어간 타일 표지가 붙어있다. 헤밍웨이의 이름을 딴 산책로다.
산책로라 해봤자 파라도르 호텔 건물과 절벽 사이의 1m 남짓한 거리로 헤밍웨이 명성을 이용한 상술이다. 지금은 5성급 호텔로 몇 달 전에 예약을 해야 할 정도로 인기라고 한다.
론다는 근대 투우의 발상지다. 창설자 프란시스코 로메로가 이곳에서 태어났다.
본래 스페인 투우사들은 말을 타고 소와 대결을 벌였다. 로메로가 ‘무레타’라 불리는 빨간 망토와 칼만 들고 소에게 도전한 것을 시작으로 스페인 투우는 지금 같은 형태로 발전했다.
어느 도시에나 같은 이름인 스페인광장엔 검은 투우 동상이 달려들듯이 앞발을 들고 서있다. 그 옆 바로크 양식의 론다 투우장은 1785년에 지은 스페인 최초의 투우장이었으나 지금은 투우박물관으로 활용한다.
회랑에는 투우사들이 입었던 의상과 투우 포스터와 사진을 전시해 놓았다.
스페인의 오랜 전통과 관광산업인 투우가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야만적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관습이며 동물 학대가 반대 이유다.
스페인령 카나리아 제도가 1991년 처음으로 투우를 금지한데 이어 북부 카탈루냐 주는 2011년 말 투우 금지 법안을 통과시켜 투우경기가 해마다 줄고 있는 추세다. 바르셀로나 도심의 투우경기장은 쇼핑몰로 바뀌었다.
최근 스페인 중앙 정치권에서 투우를 국가문화재로 지정해 보존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지만 투우가 옛 명성을 되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카탈루냐 주의 반발이 심한데다 EU의 보조금을 타내려는 속셈이 아닌가라는 논란이 소싸움 같은 대립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투우사들은 “투우는 4살까지 푸른 초원을 누비며 호강하다가 경기장에서 죽고, 육우는 우리에 갇혀 살만 찌우다 1년 만에 도살되는데 과연 어느 소가 더 불행한가”라고 반문하며 투우 폐지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그들에겐 생계가 걸린 문제다.
피카소는 투우를 보려고, 헤밍웨이는 집필을 하러 그 곳을 자주 찾았다. 론다의 상징인 누에보 다리는 거대한 댐처럼 견고하다.
길이 120m, 높이 98m 다리 난간에 기대어 바라보는 타호 협곡은 오금이 저리도록 아찔하다.
계곡 너머로 펼쳐진 너른 들판의 목가적 풍광은 가슴이 탁 트이고 눈길이 시원해진다. 다리를 경계로 옛날 아랍인이 살던 구시가지와 투우장이 있는 신시가지로 갈린다. 다리 부근 언덕 위의 하얀 집들은 동화 속 요정의 집처럼 아름답다.
누에보 다리는 42년에 걸친 난공사 끝에 1793년 완공됐다. 지금은 관광명소지만 슬픈 역사의 현장이다.
스페인 내전 때는 죄수를 가두는 감옥이었고, 적을 처형하는 곳이었다. 당시 공화파와 프랑코파가 번갈아 마을을 점령했을 때, 적을 두들겨 팬 뒤 협곡으로 던져버렸다니 끔찍한 참극의 현장이다.
스페인 내전을 다룬 헤밍웨이의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도 등장한다. 헤밍웨이가 머물며 집필을 했던 호텔 외벽엔 그의 얼굴이 들어간 타일 표지가 붙어있다. 헤밍웨이의 이름을 딴 산책로다.
산책로라 해봤자 파라도르 호텔 건물과 절벽 사이의 1m 남짓한 거리로 헤밍웨이 명성을 이용한 상술이다. 지금은 5성급 호텔로 몇 달 전에 예약을 해야 할 정도로 인기라고 한다.
론다는 근대 투우의 발상지다. 창설자 프란시스코 로메로가 이곳에서 태어났다.
본래 스페인 투우사들은 말을 타고 소와 대결을 벌였다. 로메로가 ‘무레타’라 불리는 빨간 망토와 칼만 들고 소에게 도전한 것을 시작으로 스페인 투우는 지금 같은 형태로 발전했다.
어느 도시에나 같은 이름인 스페인광장엔 검은 투우 동상이 달려들듯이 앞발을 들고 서있다. 그 옆 바로크 양식의 론다 투우장은 1785년에 지은 스페인 최초의 투우장이었으나 지금은 투우박물관으로 활용한다.
회랑에는 투우사들이 입었던 의상과 투우 포스터와 사진을 전시해 놓았다.
스페인의 오랜 전통과 관광산업인 투우가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야만적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관습이며 동물 학대가 반대 이유다.
스페인령 카나리아 제도가 1991년 처음으로 투우를 금지한데 이어 북부 카탈루냐 주는 2011년 말 투우 금지 법안을 통과시켜 투우경기가 해마다 줄고 있는 추세다. 바르셀로나 도심의 투우경기장은 쇼핑몰로 바뀌었다.
최근 스페인 중앙 정치권에서 투우를 국가문화재로 지정해 보존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지만 투우가 옛 명성을 되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카탈루냐 주의 반발이 심한데다 EU의 보조금을 타내려는 속셈이 아닌가라는 논란이 소싸움 같은 대립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투우사들은 “투우는 4살까지 푸른 초원을 누비며 호강하다가 경기장에서 죽고, 육우는 우리에 갇혀 살만 찌우다 1년 만에 도살되는데 과연 어느 소가 더 불행한가”라고 반문하며 투우 폐지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그들에겐 생계가 걸린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