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사회비극
경쟁사회비극
by 운영자 2013.05.27
버스 승강장, 골목길, 할인마트, 초등학교, 아파트 비상계단, 공공도서관…. 공통점은 무엇일까? 대검찰청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묻지마 범죄’가 발생한 곳이다. 이젠 그 어디도 안전한 곳이 없다는 결론이다.
게다가 아침 신문에 10대 청소년이 길 가던 80대 노인을 이유 없이 폭행해 의식불명 상태라는 소식이 실려 있다.
10대 청소년이 귀가하던 여고생을 ‘묻지마 폭행’을 휘둘렀다는 소식도 실려 있다. 그동안 주로 30~40대가 저지르던 묻지마 범죄가 청소년들에게까지 번지고 있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되었을까? 보고서는 피해망상과 같은 개인 병리적 문제와 함께 현실에 대한 불만과 절망감 때문에 묻지마 범죄가 일어나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결국 비정한 경쟁을 이겨내지 못하고 퇴로 없는 궁지에 내몰린 패자들이 적개심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사람이 무섭다! 누가 언제 어디서 나를 해칠지 모르니 ‘오늘도 무사히!’ 우리 자신의 안전을 행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 모두 승자독식의 ‘미친 경쟁’때문이다.
오늘날 경쟁의 독성이 얼마나 무서운지, 우리는 이미 드러난 폭력성만으로도 충분히 실감할 수 있다.
그런데 승자도 패자도 모두에게 비극을 안겨주는 이 비극적 경쟁에서 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아이 어른 가리지 않고 끌어들여 비정한 경쟁으로 몰아 놓고 즐기는 세력, ‘보이지 않는 더러운 손’들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열에서 이탈하면 도태될까 두려워 너도나도 우리 모두 앞다투어 경쟁대열에 끼어들어 오늘도 서로를 짓밟고 있다.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경쟁의 전사로 키워진다. 가정 교육, 학교 교육은 인성을 제거하고 최후의 1인자가 되어야 한다는 일념의 괴물을 심고 있다.
인성을 가르치는 선생은 도태된다. 인성을 배운 아이도 도태된다.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모두 승자독식의 경쟁에 내몰려 있다. 차라리 배우지 않고 가르치지 않는 것이 양심적 인간인 세상이 되고 말았다.
승자독식은 오로지 최후의 승리자를 제외하고 모든 이들을 패자로 몰아간다. 패자가 되지 않으려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이기고 봐야 한다. 결국 우리는 서로에게 인정도 눈물도 없는 사이코패스가 되어야 한다.
인류문명이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지만 우리 대한민국은 아랑곳없다. 장기화되는 경제적 불황, 뿌리 깊은 정치적 갈등, 거센 이기적 욕구의 분출 등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위기 속에 빠져 있는 대한민국! 서서히 뜨거워지는 물속의 개구리같이 위기를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
위기의식이 없다. 위기를 직시하고 절망을 해야 재생의 희망을 가질 터인데 눈앞의 이익에 눈 어두워 승자독식 경쟁게임에 빠져 미래의 희망을 차버리고 있다.
언제까지 ‘사람이 무섭다!’고 한탄할 것인가? 언제까지 ‘나만 아니면 돼!’ 복불복의 행운을 빌며 ‘너 죽고 나 살자’는 비정한 노름판을 벌이고 있을 것인가! 인간과 동물의 근원적인 차이는 희망의 여부라는데 과연 희망은 있는가? 희망이 있다면 과연 판도라 상자 속에 남아 있는 희망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러나 오늘도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경쟁하고 경쟁을 가르치기 위해 바쁜 발걸음을 내딛는다.
<이성록 박사>
게다가 아침 신문에 10대 청소년이 길 가던 80대 노인을 이유 없이 폭행해 의식불명 상태라는 소식이 실려 있다.
10대 청소년이 귀가하던 여고생을 ‘묻지마 폭행’을 휘둘렀다는 소식도 실려 있다. 그동안 주로 30~40대가 저지르던 묻지마 범죄가 청소년들에게까지 번지고 있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되었을까? 보고서는 피해망상과 같은 개인 병리적 문제와 함께 현실에 대한 불만과 절망감 때문에 묻지마 범죄가 일어나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결국 비정한 경쟁을 이겨내지 못하고 퇴로 없는 궁지에 내몰린 패자들이 적개심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사람이 무섭다! 누가 언제 어디서 나를 해칠지 모르니 ‘오늘도 무사히!’ 우리 자신의 안전을 행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 모두 승자독식의 ‘미친 경쟁’때문이다.
오늘날 경쟁의 독성이 얼마나 무서운지, 우리는 이미 드러난 폭력성만으로도 충분히 실감할 수 있다.
그런데 승자도 패자도 모두에게 비극을 안겨주는 이 비극적 경쟁에서 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아이 어른 가리지 않고 끌어들여 비정한 경쟁으로 몰아 놓고 즐기는 세력, ‘보이지 않는 더러운 손’들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열에서 이탈하면 도태될까 두려워 너도나도 우리 모두 앞다투어 경쟁대열에 끼어들어 오늘도 서로를 짓밟고 있다.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경쟁의 전사로 키워진다. 가정 교육, 학교 교육은 인성을 제거하고 최후의 1인자가 되어야 한다는 일념의 괴물을 심고 있다.
인성을 가르치는 선생은 도태된다. 인성을 배운 아이도 도태된다.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모두 승자독식의 경쟁에 내몰려 있다. 차라리 배우지 않고 가르치지 않는 것이 양심적 인간인 세상이 되고 말았다.
승자독식은 오로지 최후의 승리자를 제외하고 모든 이들을 패자로 몰아간다. 패자가 되지 않으려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이기고 봐야 한다. 결국 우리는 서로에게 인정도 눈물도 없는 사이코패스가 되어야 한다.
인류문명이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지만 우리 대한민국은 아랑곳없다. 장기화되는 경제적 불황, 뿌리 깊은 정치적 갈등, 거센 이기적 욕구의 분출 등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위기 속에 빠져 있는 대한민국! 서서히 뜨거워지는 물속의 개구리같이 위기를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
위기의식이 없다. 위기를 직시하고 절망을 해야 재생의 희망을 가질 터인데 눈앞의 이익에 눈 어두워 승자독식 경쟁게임에 빠져 미래의 희망을 차버리고 있다.
언제까지 ‘사람이 무섭다!’고 한탄할 것인가? 언제까지 ‘나만 아니면 돼!’ 복불복의 행운을 빌며 ‘너 죽고 나 살자’는 비정한 노름판을 벌이고 있을 것인가! 인간과 동물의 근원적인 차이는 희망의 여부라는데 과연 희망은 있는가? 희망이 있다면 과연 판도라 상자 속에 남아 있는 희망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러나 오늘도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경쟁하고 경쟁을 가르치기 위해 바쁜 발걸음을 내딛는다.
<이성록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