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문자 단순화, 사고(思考)도 단순해진다

문자 단순화, 사고(思考)도 단순해진다

by 운영자 2013.05.31

“글쓰기 왜 필요한가요?”

“자소서(자기소개서) 쓸 때 필요 합니다”

서울의 한 대학에서는 올해 논술 우수자 전형으로 600명이나 선발했으니 논술과 자소서 필요성은 실용적인 대답이다.
‘글쓰기는 곧 생활이다’고 강조한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리포터와 학사논문, 취직 시험 때도 자기소개서를 써야 한다. 직장에서는 기획서와 보고서를 잘 써야 유능한 인재로 주목 받는다. 논리적인 사고(思考)와 탄탄한 문장력이 관건이다.

고교생들의 자기소개서엔 ‘자기’가 없다. 첨삭을 하다보면 나는 어떤 활동을 했고, 단점은 어떻게 고치고 성격은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알맹이가 빠진 경우가 많다.

“부모님의 사랑과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자랐습니다.” “봉사 활동을 통해 보람을 느꼈습니다.” 구체적인 사례 없이 두루뭉술하다. 대입 자소서는 표절에 대한 잣대가 엄격해 모방하면 바로 들통 난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자기소개서와 교사추천서를 데이터베이스(DB)화 해놓았다. 대필과 모방이 심해 취한 조치다. 유사도가 5%를 넘으면 표절 여부를 심사한다.

실용적 글쓰기와는 달리 글쓰기를 업으로 삼으려면 창의적 글짓기에 주력해야 하고 재능이 뒷받침돼야 한다.

“글쓰기를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글쓰기에 왕도가 없는 만큼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多想)의 세 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많이 읽다보면 감성이 풍부해지고 어휘력도 자연히 는다.

생각이 깊어지면 옹달샘에 고인 물을 퍼내듯 표출하고 싶은 충동이 인다. 학생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일기쓰기다.

단순히 일상을 나열하지 말고 생각이나 느낌을 쓰는 습관이 필요하다.

글쓰기 과제를 첨삭하다 보면 주어와 목적어 연결이 안 되거나 문장의 군더더기가 많고 접속어 남발이 심하다. ‘거리 가판대’라거나 ‘무분별한 난립’ 등 중첩어를 예사로 쓴다.

‘노력은 배신 안 한다(배신하지 않는다)’와 같이 구어체를 쓰거나, ‘결단이 요구된다(필요하다)’는 번역 투의 문장도 거슬린다. 줄임말을 문장에 그대로 쓰기도 한다.

SNS(소셜네트워킹서비스)와 문자메시지, 카카오톡을 하면서 줄임말을 쓰는 버릇이 체질화 된 탓이다.

문자 단순화 현상은 최근 국립국어원의 ‘청소년 언어 실태 언어의식 전국 조사’에서도 드러났다. 전국 초·중·고 학생들의 어절(語節) 11만7955개를 수집·분석한 결과 ‘ㅃ2(빠이·헤어질 때 인사)’, ‘ㅅㄱ(수고하세요)’ 등 모음을 생략한 단어가 수두룩하다.

심지어 대학 기말고사 보고서에 조차 ‘샘(선생님), 이거 쓰느라 ㅎㄷㄷ(후덜덜)했어여 ㅈㅅ(죄송), ㅅㄱ(수고)’라고 썼다는 기사를 읽고 쓴 웃음 지었다.

문자의 단순화에 익숙해지면 사고(思考)도 단순화되기 마련이고 글쓰기도 더 어려워진다. 세종대왕이 어문의 파괴를 아시면 진노할 일이다.

<이규섭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