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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탐대실

소탐대실

by 운영자 2013.06.05

어떤 마을에 서당이 있었답니다. 서당에는 훈장님이 있어 동네의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훈장님은 쉬는 시간이 되면 다락에서 무엇인가를 조심스레 꺼내 혼자 들고는 하였습니다.

아이들이 그것을 보고 무엇이냐 물으면 훈장님의 대답은 늘 같았습니다. 이것은 어른들만 먹는 것이어서 아이들이 먹으면 죽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훈장님께서 읍내를 다녀올 일이 생겼습니다. 열심히 책을 읽으며 공부하고 있으라 당부하고 길을 나섰지만 선생님 없는 서당이 어찌 조용했겠습니까?

훈장님이 마당을 나서자마자 아이들 세상이 되고 말았지요. 새장을 벗어난 새들이 되었습니다.

신나게 놀던 아이들이 마침내 늘 궁금해 하던 선생님의 다락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는 선생님이 혼자 드시던 병을 찾아냈습니다.

병 안에는 무엇인가가 가득 담겨 있었는데 한 아이가 뚜껑을 열고 조심스레 그 맛을 보았습니다.

그 맛이 어찌나 달고 좋던지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달려들어 금방 병을 비우고 말았습니다. 짐작하셨겠습니다만, 훈장님이 혼자 먹었던 것은 다름 아닌 꿀이었던 것입니다.

맛있게 먹은 것은 좋은데 선생님이 아끼시던 것을 다 먹어 치웠으니 여간 큰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이 모두 걱정을 하고 있을 때 한 아이가 꾀를 내었습니다. 그 아이는 선생님이 아끼시던 벼루를 가져오더니 벼루를 방바닥에 내던져 깨뜨려버리고 말았습니다.

아이들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는데, 꾀를 낸 아이는 걱정하지 말라며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하라고 말했습니다.

일을 마친 선생님이 서당으로 돌아오니 이게 웬일이겠습니까? 아이들이 모두 방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이들이 쓰러져 있는 방 안에는 텅 빈 꿀 병과 함께 깨어진 벼루가 어지럽게 나뒹굴고 있었으니 말이지요.

깜짝 놀란 훈장님이 아이들을 흔들어 깨워 일으킨 뒤 도대체 어찌된 연유인지를 물었습니다. 그 때 벼루를 깼던 아이가 훈장님께 대답을 했습니다.

“훈장님, 죄송해요. 우리가 놀다가 훈장님께서 아끼고 아끼시던 귀한 벼루를 깼어요. 우리 모두 죽을 죄를 지었다 싶어 아이들이 먹으면 죽는다고 하셨던 그것을 먹고 죽을 때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며 괜히 웃음이 나는 것은 아이들의 꾀가 재미있기도 하거니와, 제 꾀에 제가 당하는 훈장님의 모습이 고소해보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훈장님은 아이들에게 뭐라고 했을까요? 할 말이 없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평소에 꿀을 아이들에게도 한 숟갈씩 나누어주었다면 꿀도 벼루도 잃어버리지 않았을 텐데 말이지요.

작은 것을 탐하다가 큰 것을 잃어버리는 것을 일러 ‘소탐대실’이라고 합니다. 당장의 눈앞의 이익을 위해 욕심을 부리다가 결국은 큰 것을 잃어버리고 마는 모습들을 어렵지 않게 보게 됩니다.

무엇이 정말로 큰 것인지를 아는 것이 참된 삶의 첫 걸음이지 싶습니다.

<한희철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