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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보고 싶었다’는 어느 탈주자의 말

‘바다가 보고 싶었다’는 어느 탈주자의 말

by 운영자 2013.06.27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이 있었다. 검사의 조사를 받던 범인이 수갑을 찬 채 조사실을 탈출한 사건이다. 그를 붙잡기 위해 전국의 경찰이 동원되었고, 언론에 그의 얼굴이 공개됐다.

절도 전과 12범. 뭘 훔쳤는지 모르지만 남의 것을 훔치는 일은 범법이다. 어떻든지 그는 법의 심판을 받고 죄의 대가를 달게 받아야 옳다.

그러나 그에 관한 뉴스를 볼 때마다 뭔가 마음 한 켠에 좀 안 됐다는 생각이 일었다. 하도 사람 목숨을 다치게 하는 이들이 많은 세상을 살아 그런가. 아니면 절도범이라는 말 속에 숨어 있는 장발장 때문일까.

어쨌거나 그는 다행히 잡혔다. 탈주한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그는 ‘징역을 살기 싫었다.’고 대답했다.

죄수 두 명과 맞서싸워도 이길 만큼 힘이 좋은 그에게 교도소 생활은 힘들기도 했겠다. 징역 살기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만 큰 덩치에 비해 그에겐 그런 솔직함이 있어보였다.

그 이튿날이었다. 그에 대한 기사가 또 신문에 나왔다. 부산에서 발각되어 울산으로 도주해놓고 경찰 수색이 한창인 부산으로 다시 돌아온 이유가 뭐냐는 물음에 그는 또 이렇게 대답했다. “바다가 보고 싶었다”

그러니까 그는 잡힐 걸 뻔히 알면서 바다가 가까운 부산에 머물고 싶어한 것이다. 바다야 울산에도 있지만 울산이라고 다 바다가 아니다. 그의 머릿속 ‘바다’란 부산이다.

바다는 사람이 접근할 수 있는 마지막 지점이며 모든 것을 용서해주는 어머니다. 꼭 바다를 보기 위해 부산에 돌아왔다기보다 어머니 곁에서 이 사건을 종결짓겠다는 말로 들렸다.

물론 그의 말 대로 지칠 대로 지쳤고, 모든 걸 포기한 상태에서 한 말이겠지만 ‘바다가 보고 싶었다’는 그 말은 전과 12범의 입에서 나온 말 같지 않게 매우 인간적이었다. 절망의 끝에서 발견한 일말의 회한이랄까.

살다 보면 누구나 지친다. 어떤 삶을 살아가건 살아있는 한 사람은 상처받고 그래서 누군가로부터 위안받을 필요가 있다.

남을 속이고, 나를 속이고, 남에게 나를 과장하고, 경쟁이라는 이름으로 남을 제치고 살자면 누구나 안으로 상처를 받는다.

가끔 해수욕철이 지난 뒤 바다에 나가면 아무도 찾지 않는 모랫벌을 홀로 걷는 이들이 있다. 이들을 볼 때면 나는 ‘싱거운 사람들!’ 그랬다.

그러나 험한 바다와 마주 하지 않고서는 아픔을 견뎌낼 수 없다면 그에겐 상처가 많다. 그들은 지상의 마지막 끝에 서서 바다의 위안을 받으며 상처 많은 자신을 살려낸다.

교도소가 ‘징역살기 싫은’곳이 아니라 마음의 상처를 회복하고 새로운 사람으로 돌아나올 수 있는 ‘바다’와 같은 곳이 될 수는 없을까.

<권영상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