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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열차’ 타고 본 ‘설국열차’

‘폭염열차’ 타고 본 ‘설국열차’

by 운영자 2013.08.16

환경 재앙의 예고인가? 올 여름 날씨 변덕은 유별나다. 중부지방에 집중 된 가장 긴 장마. 장마 뒤 폭염은 울산 일부지역의 수은주를 40도까지 끌어올렸다.

찜통더위에 숨이 턱턱 막히고 열대야에 밤잠을 설치기 일쑤다. 나이가 들수록 체온조절능력이 떨어지니 더위에 쉽게 지친다. 한반도는 거대한 ‘폭염열차’다. 더위를 잠시 시키고 시간도 보낼 겸 빙하기 ‘설국열차’에 탑승했다.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세계 정상들의 합의하에 ‘CW-7’라는 화학물질이 대량 살포되고, 그 부작용으로 지구가 꽁꽁 얼어붙는다.

마지막 생존자들을 태운 설국열차가 궤도를 끝없이 달리며 이야기는 펼쳐진다. 맨 꼬리 칸은 춥고 배고픈 승객들로 바글댄다. 양갱 비슷한 단백질 조각을 배급받아 연명하는 빈민굴이다. 앞 칸으로 갈수록 객실은 호화롭다.

식물이 자라고 부유층 자녀들은 공부를 하고 어른들은 술과 마약으로 환락에 빠진다.

제일 앞 칸은 기차의 심장인 엔진을 개발한 절대 권력자 윌포드(에드 해리스)가 탑승해 체제의 양극화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열차를 탈 때 처음 정해진 칸이 영원한 족쇄로 작용하는 자본체제다.

체제비판의 메시지를 담으려는 의도가 깔렸다. 당신은 어느 칸 승객인가? 영화는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꼬리 칸의 젊은 지도자 커티스(크리스 에번스)는 긴 세월 준비해온 폭동을 일으키며 열차 전체를 해방시키려 한다.

혈투를 벌이며 전진한 커티스는 절대 권력자 윌포드와 대면한다. 질주의 한계에 부딪히면서 긴장감은 떨어지고 대사는 지루하다. 관객의 기대를 한껏 부풀려 놓은 뒤 파괴와 탈출로 결말짓는다.

17년 째 지구를 돌던 설국열차는 설원에서 산산조각 난다. 체제 양극화의 거창한 담론은 허망하게 실종된다. 살아남은 요나와 소년의 시선에 북극곰이 들어온다. 빙하기 이후 생명이 존재할 수 있음을 상징한다.

<이규섭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