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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서문화의 변화

피서문화의 변화

by 운영자 2013.08.23

별장이 별건가.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 같은 집’은 아니라도 언제든 찾아가 휴식의 여유를 누릴 수 있으면 별장 아닌가. 몇 년 새 농어촌 빈집을 별장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옛 직장 동료가 10여 년 전 어촌의 빈 집을 구입해 가끔씩 이용한다. 친인척은 물론 가까운 친구들에게도 빌려줘 인심을 얻는다.

그동안 몇 차례 바다낚시도 할 겸 가자는 제의를 받았으나 낚시와는 거리가 멀어 동참하지 못했다.

피서의 끝물인 지난 주말 옛 동료들과 의기투합해 그 곳을 찾았다. 경남 남해군에서도 끄트머리에 위치한 상주면 두모마을이다.

본래 마을이름은 ‘큰 항아리모양의 바닷가’란 뜻의 ‘드므개’다. 밀물 때 들어오는 고기를 그물로 쳐서 썰물 때 들어가 맨손으로 고기를 잡는 개매기체험과 카약체험도 할 수 있으나 피서 철이지나 한가하다.

슬레이트 지붕에 일자형 삼간의 전형적인 시골집이다. 구입 후 주방시설과 화장실을 갖추고 마루에 유리 미닫이문을 달았다.

마당 한 귀퉁이 작은 헛간채에 조립식 식탁 등을 보관해놓았다.

화단에는 설두화가 탐스럽게 피었고 능소화가 붉은 빛 자태를 뽐낸다. 마당 끝에서면 먼발치에 바다가 펼쳐진다.

마당에 조립식 식탁을 꺼내 놓고 준비해간 음식을 나눠 먹으며 흘러간 추억을 자맥질한다. 해풍에 묻어오는 짭짤한 바다 냄새와 무더기로 쏟아지는 별빛을 바라보며 무더위에 지친 심신을 추스른다.

언론계 한 선배는 농어촌 빈 집을 전세로 계약하여 사계절 활용한다. 어느 해는 강원도 바닷가에 있다고 하더니 지난해는 지리산 언저리에 머문다고 한다.

빈 집을 전세로 이용하는 이유는 늙어가면서 부동산에 묶어둘 필요가 없고 전세금이 적을수록 집을 빼기 쉽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실용적이다.

리조트나 펜션 보다 불편하지만 북적거리지 않고 오붓하게 여유를 누릴 수 있어 좋다고 한다.

남해의 명소로 떠오른 독일마을은 가난했던 시절 광부나 간호사로 독일에 건너갔던 교포들이 고국에 돌아와 모여 사는 마을이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새하얀 외벽과 다홍빛 기와지붕의 이층집들은 이국정취가 물씬 풍긴다.

마을 들머리는 펜션과 카페가 즐비하게 들어서 관광지로도 유명세를 타고 있으나 정작 교포주민들은 마을을 떠나고 있어 대조적이다. 전체 34가구 가운데 11가구가 이미 마을을 떠났고, 4가구는 집을 내놨다고 한다.

관광객들이 몰려 집을 기웃거려 생활이 불편하고 의료혜택과 문화생활을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2010년에 조성한 미국마을은 22가구 중 대부분 민박형 펜션과 음식점 간판이 붙어있어 재미교포 정착촌이라는 게 무색하다. 들머리 자유의 여신상과 인디언 조형물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관광객들로 붐빈다.

이번에는 일본풍 전통 건축양식을 활용한 재일교포 정착촌인 일본마을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한·일 관계가 급속하게 냉각되면서 반대의 목소리도 크다. 농어촌 빈집을 활용하거나 오토캠핑이 새로운 피서문화로 부상하는 변화의 물결 속에 교포마을이란 미명아래 늘어나는 펜션은 과유불급이다.

<이규섭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