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기찬 지역사회! 세대 간 소통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1)
활기찬 지역사회! 세대 간 소통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1)
by 운영자 2013.08.26
사람의 얼굴에는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사가 고스란히 담겨진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에이브러햄 링컨 (Abraham Lincoln)은 ‘나이가 40이 넘은 사람은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Every man over forty is responsible for his face)’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과연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공자 역시 논어(論語)의 위정(爲政)편에서 나이의 여러 이칭들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는데, 그 중 공자는 40은 불혹(不惑)이라 하여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고 세상 일에 흔들리지 않을 나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만큼 사람은 자신의 나이에 걸맞은 행동과 마음가짐이 필요한 것이라 할 수 있고, 그런 삶의 태도에 행복이란 자족의 요소를 가미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인생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인생사라는 것도 결국엔 혼자만이 살아갈 수 없는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구조라는 점에서 고대의 유명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도 이런 점을 간파하여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명제를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즉 그의 논리에 따르면 사람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사회 속에서 자신의 안전을 보호받으며 살기 위해 사회라는 울타리를 힘입어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곧 사회라는 울타리를 보호막 삼아 타인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구조를 역설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만큼 세대 간의 이해와 존중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이라 할 수 있으나, 문제는 바로 그 사회라는 울타리가 세대 간 소통의 부재로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과 사람의 진정한 만남은 대화로써 완성될 만큼 소통의 중요성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것인데, 오늘날 그 소통의 근간이 흔들리고 궁극적으로는 사회의 여러 문제들마저 파생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심히 우려스럽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노인보호전문기관 역시 노인학대와 관련한 여러 사례들을 다루는 일을 하고 있는 기관이다. 하지만 본 기관의 여러 사례들 중, 소통의 단절이나 부재로 야기된 학대사례들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그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하겠다.
그런 연유로 본 기관이 존재하여 그 소통의 원활한 재계를 위해 힘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본 기관은 ‘세대 간 존중, 어르신과 함께하는 밝고 건강한 사회 만들기’라는 비전을 가지고 업무의 전반적인 사항을 진행하고 있는데, 업무를 진행하는 중간 중간 ‘세대 간 존중’이란 단어가 현실과는 동떨어진 괴리감을 전해온다고 느낄 때가 많다.
우리가 사는 사회 속에는 아무래도 강자와 약자가 공존하기 마련이고, 특히 어린이, 임산부, 그리고 젊은 청·장년을 지난 원숙한 노인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할 사회적 약자들이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우리는 반도국가라는 지형적 특성으로 말미암아 줄기차게 타 민족의 침략을 받아왔다.
그 일례로 지금으로부터 약 100여 년 전 일본에 의해 주권을 상실당한 적이 있었고, 비록 주권은 회복했지만 지금까지도 그 후유증을 일본의 도발을 통해 끊임없이 직·간접적으로 시달리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약 60여 년 전에는 한국전쟁으로 국토가 폐허가 되는 처참한 지경에 이르기도 하는 등 많은 굴곡의 세월을 거쳐 온 우리들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점은 우리는 수많은 굴곡의 역사를 묵묵히 헤쳐 나왔으며, 지구촌 각국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단기간에 ‘한강의 기적’이라는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어냈다는 점이다.
우리의 존재 가치를 더욱 내실화하는데 큰 도움을 준 사람들, 그들은 누구일까? 아마도 묵묵히 나라의 역군으로서 그 능력을 발휘해 주신 지금의 노인들이 아닐까 한다.
<임동규>
- 전라남도 노인보호 전문기관 관장
과연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공자 역시 논어(論語)의 위정(爲政)편에서 나이의 여러 이칭들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는데, 그 중 공자는 40은 불혹(不惑)이라 하여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고 세상 일에 흔들리지 않을 나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만큼 사람은 자신의 나이에 걸맞은 행동과 마음가짐이 필요한 것이라 할 수 있고, 그런 삶의 태도에 행복이란 자족의 요소를 가미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인생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인생사라는 것도 결국엔 혼자만이 살아갈 수 없는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구조라는 점에서 고대의 유명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도 이런 점을 간파하여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명제를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즉 그의 논리에 따르면 사람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사회 속에서 자신의 안전을 보호받으며 살기 위해 사회라는 울타리를 힘입어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곧 사회라는 울타리를 보호막 삼아 타인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구조를 역설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만큼 세대 간의 이해와 존중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이라 할 수 있으나, 문제는 바로 그 사회라는 울타리가 세대 간 소통의 부재로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과 사람의 진정한 만남은 대화로써 완성될 만큼 소통의 중요성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것인데, 오늘날 그 소통의 근간이 흔들리고 궁극적으로는 사회의 여러 문제들마저 파생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심히 우려스럽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노인보호전문기관 역시 노인학대와 관련한 여러 사례들을 다루는 일을 하고 있는 기관이다. 하지만 본 기관의 여러 사례들 중, 소통의 단절이나 부재로 야기된 학대사례들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그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하겠다.
그런 연유로 본 기관이 존재하여 그 소통의 원활한 재계를 위해 힘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본 기관은 ‘세대 간 존중, 어르신과 함께하는 밝고 건강한 사회 만들기’라는 비전을 가지고 업무의 전반적인 사항을 진행하고 있는데, 업무를 진행하는 중간 중간 ‘세대 간 존중’이란 단어가 현실과는 동떨어진 괴리감을 전해온다고 느낄 때가 많다.
우리가 사는 사회 속에는 아무래도 강자와 약자가 공존하기 마련이고, 특히 어린이, 임산부, 그리고 젊은 청·장년을 지난 원숙한 노인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할 사회적 약자들이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우리는 반도국가라는 지형적 특성으로 말미암아 줄기차게 타 민족의 침략을 받아왔다.
그 일례로 지금으로부터 약 100여 년 전 일본에 의해 주권을 상실당한 적이 있었고, 비록 주권은 회복했지만 지금까지도 그 후유증을 일본의 도발을 통해 끊임없이 직·간접적으로 시달리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약 60여 년 전에는 한국전쟁으로 국토가 폐허가 되는 처참한 지경에 이르기도 하는 등 많은 굴곡의 세월을 거쳐 온 우리들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점은 우리는 수많은 굴곡의 역사를 묵묵히 헤쳐 나왔으며, 지구촌 각국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단기간에 ‘한강의 기적’이라는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어냈다는 점이다.
우리의 존재 가치를 더욱 내실화하는데 큰 도움을 준 사람들, 그들은 누구일까? 아마도 묵묵히 나라의 역군으로서 그 능력을 발휘해 주신 지금의 노인들이 아닐까 한다.
<임동규>
- 전라남도 노인보호 전문기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