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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후반전

인생의 후반전

by 운영자 2013.09.04

담 하나로 이웃하고 있는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식사 초대를 받았습니다.기회 닿을 때마다 관심을 갖고 교제하며 살았지만 식사 초대는 뜻밖이어서 물어보니 교장 선생님이 정년퇴임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여쭤보니 교직의 길을 걸은 지가 41년 8개월이라 했습니다.

그 긴 세월을 한 길 삼아 외길로 걸어오셨다니, 그 하나만의 이유로도 충분히 축하받을 일이다 싶었습니다.

식사도 식사지만 퇴임식에 참석하는 것이 더 의미가 있는 일 아닐까 싶어 일정을 여쭸더니 퇴임식을 따로 할 계획이 없다고 합니다.

이미 각 반마다 어린이들을 따로 찾아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한 터라 따로 퇴임식을 가질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모습이 참 흔쾌하게 여겨졌습니다.

퇴임 이야기를 나눌 때 교장 선생님이 정색을 하며 부탁을 한 대목이 있습니다. ‘퇴임’이라는 말을 쓰지 말아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퇴임’이라 함은 말 그대로 ‘임무에서 물러나는 것’을 의미하는데,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전임’이란 말이 맞겠다고 제안을 했습니다.

많은 교장 선생님들은 은퇴 후 힘든 시간을 보낸다고 합니다. 아침 9시가 되면 ‘내가 왜 여기 있지?’ 하며 마음이 허전하고 불안해 진다는 것입니다.

늘 사람들 속에서 지내다가 조용한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가 낯선 일인데,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으면 그렇게 마음이 허전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은퇴한 교장 선생님들 사이에 오가는 우스운 이야기라며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었습니다.

교장으로 은퇴한 친구를 1년 뒤에 만나 어떻게 지냈느냐 물었더니 “나, 그동안 목사 됐어.” 하더랍니다.

평소엔 신앙생활도 하지 않던 이가 은퇴한 뒤 일 년 만에 목사가 되었다니, 쉬이 믿어지지가 않아 “정말인가?” 다시 물었더니 웃으면서 말하더랍니다.

“아니 기독교의 목사 말고, ‘목적 없이 사는 사람’이 되었다고.”

자연스레 선생님의 전임 뒤의 계획을 물었습니다. 선생님의 대답이 뜻밖이었습니다. 벌써 물러난 뒤의 시간이 그렇게 기다려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설렌다고 했습니다.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 것일까, 더욱 궁금해졌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캄보디아를 찾아갈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언젠가 찾아가 만난 캄보디아의 아이들이 마음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남은 시간은 캄보디아의 아이들을 위해서 살겠노라 일찍부터 마음을 정하고 있었고, 이제 그 시간이 다가와 더없이 마음이 흥분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어떤 경기든 후반전을 어떻게 맞이하느냐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물며 인생이라고 다를까요? 많은 이들이 좋은 시절 다 갔다고 여기는 정년퇴임을 앞두고 설렘으로 멋진 후반전을 기대하는 선생님, 비록 퇴임식은 따로 갖지 않지만 정말로 존경과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싶었습니다.

선생님의 후반전이 눈이 부실만큼 아름답기를 마음을 다해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