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km 완보(完步)의 경험
33km 완보(完步)의 경험
by 운영자 2013.09.10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있는데, 제가 바로 그랬습니다.
마라톤 선수들이 42.195km를 달리는데, 아무리 평지를 걷는다지만 평소 운동이라고는 일주일에 세 번 간단한 스트레칭 강습을 받는 게 고작인 50대 중반 아줌마가 33km라니요.
얼마나 먼 길인지 알았더라면 엄두조차 내지 않았을 겁니다.
‘2013 해질녘서 동틀 때까지 생명사랑 밤길 걷기’ 서울 행사를 위해 지난 8월 23일 저녁 시청 앞 서울광장에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여럿이 함께 밤길을 걸으면서 캄캄한 어둠을 지나면 반드시 동이 튼다는 것을 온몸으로 경험하고, 주위에 생명의 소중함을 널리 알리기 위해 해마다 열리는 행사입니다.
걷는 코스는 5km, 10km, 33km로 나뉘어 있는데, 몇 년 전부터 벼르다가 드디어 참여하게 된 저는 이왕 걷는 것 용감하게 33km 코스를 선택했습니다.
밤새 걷는 거리 33km는 33분마다 한 명씩 스스로 목숨을 끊는 우리의 현실을 반영한 가슴 아픈 숫자입니다.
처음에는 일행 세 명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여유만만하게 걸음을 떼어놓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남산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에서부터 헉헉대기 시작해 반환점인 한강 반포대교 휴식처에 이르러서는 큰 대자로 누워버렸습니다.
멀리 강변도로를 바라보니 자동차들이 달립니다.
조금 걸어 나가 택시를 타면 집에 금방 갈 수 있을만한 위치입니다. 더는 못 걷겠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러면 일행들도 저와 함께 대열을 빠져나와야 할 것이고, 그러면 그들도 중도포기를 하게 되니 차마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걷고, 걷고, 또 걷다보니 한강변을 지나 청계천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졸려서 눈꺼풀이 저절로 내려오고 다리는 천근만근, 목은 마른데 더 이상 물도 넘어가지 않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다리가 움직이니 앞으로 걸어 나갈 뿐입니다.
그래도 끝은 있는 법. 드디어 저 멀리 서울광장이 보입니다.
마지막 힘을 내어 다리를 질질 끌며 갑니다. 사람들의 박수와 환호가 고맙기는 해도 웃을 기력조차 없습니다.
시청 건물에 달린 시계가 새벽 5시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장장 아홉 시간이 걸렸습니다.
‘완보증’을 들고 집에 돌아와서는 그대로 쓰러져 누웠습니다. 정말 무식하면 용감합니다.
그래도 함께한 친구들이 있어 완보할 수 있었고, 내 발로 걸어야 끝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 발로 걸어야만 도착점에 이를 수 있는 것처럼 인생 역시 다른 사람이 살아주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내가 살아내고 감당해야 하는 것, 그러니 힘들더라도 한 발 한 발 내 힘으로 걷는 수밖에는 없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유경작가>
마라톤 선수들이 42.195km를 달리는데, 아무리 평지를 걷는다지만 평소 운동이라고는 일주일에 세 번 간단한 스트레칭 강습을 받는 게 고작인 50대 중반 아줌마가 33km라니요.
얼마나 먼 길인지 알았더라면 엄두조차 내지 않았을 겁니다.
‘2013 해질녘서 동틀 때까지 생명사랑 밤길 걷기’ 서울 행사를 위해 지난 8월 23일 저녁 시청 앞 서울광장에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여럿이 함께 밤길을 걸으면서 캄캄한 어둠을 지나면 반드시 동이 튼다는 것을 온몸으로 경험하고, 주위에 생명의 소중함을 널리 알리기 위해 해마다 열리는 행사입니다.
걷는 코스는 5km, 10km, 33km로 나뉘어 있는데, 몇 년 전부터 벼르다가 드디어 참여하게 된 저는 이왕 걷는 것 용감하게 33km 코스를 선택했습니다.
밤새 걷는 거리 33km는 33분마다 한 명씩 스스로 목숨을 끊는 우리의 현실을 반영한 가슴 아픈 숫자입니다.
처음에는 일행 세 명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여유만만하게 걸음을 떼어놓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남산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에서부터 헉헉대기 시작해 반환점인 한강 반포대교 휴식처에 이르러서는 큰 대자로 누워버렸습니다.
멀리 강변도로를 바라보니 자동차들이 달립니다.
조금 걸어 나가 택시를 타면 집에 금방 갈 수 있을만한 위치입니다. 더는 못 걷겠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러면 일행들도 저와 함께 대열을 빠져나와야 할 것이고, 그러면 그들도 중도포기를 하게 되니 차마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걷고, 걷고, 또 걷다보니 한강변을 지나 청계천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졸려서 눈꺼풀이 저절로 내려오고 다리는 천근만근, 목은 마른데 더 이상 물도 넘어가지 않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다리가 움직이니 앞으로 걸어 나갈 뿐입니다.
그래도 끝은 있는 법. 드디어 저 멀리 서울광장이 보입니다.
마지막 힘을 내어 다리를 질질 끌며 갑니다. 사람들의 박수와 환호가 고맙기는 해도 웃을 기력조차 없습니다.
시청 건물에 달린 시계가 새벽 5시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장장 아홉 시간이 걸렸습니다.
‘완보증’을 들고 집에 돌아와서는 그대로 쓰러져 누웠습니다. 정말 무식하면 용감합니다.
그래도 함께한 친구들이 있어 완보할 수 있었고, 내 발로 걸어야 끝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 발로 걸어야만 도착점에 이를 수 있는 것처럼 인생 역시 다른 사람이 살아주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내가 살아내고 감당해야 하는 것, 그러니 힘들더라도 한 발 한 발 내 힘으로 걷는 수밖에는 없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유경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