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란 무엇인가?
‘집’이란 무엇인가?
by 운영자 2013.09.16
<박강현>
(사)한국해비타트
전남동부지회사무국장
이스마엘 베야의 자전적 소설 <집으로 가는 길>은 소년병으로 내몰리는 주인공에게 집의 상실은 곧 감성의 파괴임을 보여준다.
이들에게 집은 상처받은 영혼이 쉬어갈 수 있는 안식처임과 동시에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집은 ‘수백 밤을 눈물로 새운 아픔도 / 가슴에 피로 새긴 증오’까지도 ‘살갗에 묻는 가벼운 티끌’인양 여기게 하며 ‘가볍게 걸어가게 할 수 있는 곳’(신경림 <집으로 가는 길>)이 되게 한다.
그런데 그런 집이 없는 사람이 너무 많다. 그것도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며 주택보급률 110%대에 이르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집의 절대부족으로부터 비롯되지 않는다는데 있다.
최근 손현주 주연의 ‘숨바꼭질’이란 영화는 이런 집에 대한 왜곡된 집착을 다룸으로써 사회적 주목을 끌고 있다.
이 영화는 ‘우리 집에 숨어사는 누군가가 우리의 모든 것을 무너뜨린다’는 설정을 뼈대로 하고 있다.
내가 사는 우리 집에 몰래 숨어들어와 가족을 해치고 집을 차지하는 이 괴한은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에게는 매일같이 경험하는 것의 실재이기도 하다.
치솟는 물가, 절대로 반값으로 떨어지는 않는 대학등록금, 가장의 실직은 물론 시대착오적인 국가정책 등 우리의 집을 빼앗아갈 괴한들이 눈을 번득이고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럼에도 집을 매개로 한 갖가지 음모는 늘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진행되고 커진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불안하고 극단적으로 집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끔직한 공포가 현실이 되는 ‘숨바꼭질’에 매료되고 있는 것이다.
집은 생명을 잉태하고 길러내 우리의 존재를 미래로 연결하는 다리이다.
또한 배움을 이어가게 하고 사회와의 소통을 잉태하고 실현하는 곳이며 내일을 준비 하는 곳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세상으로부터 나와 내 가족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이기도 하다.
따라서 집은 치부와 축재의 수단 이전에 최소한의 삶을 영위하는 곳으로 자리매김해야한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이 집이 삶의 보금자리로써의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고 있다.
집을 향한 집착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사회가 그래서 더욱 간절하다.
국가와 사회, 미래를 준비해야하는 오늘의 우리들이 더 이상 집을 축재의 수단이 아닌 사회적 공기로 바라보아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소박하지만 안락하고 이웃을 향해 문을 열어둘 수 있는 작은 집들이 모든 이들의 삶속에 자유롭게 자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더 이상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괴한들과 맞서는 불면의 밤이 우리의 집에서 일어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사)한국해비타트
전남동부지회사무국장
이스마엘 베야의 자전적 소설 <집으로 가는 길>은 소년병으로 내몰리는 주인공에게 집의 상실은 곧 감성의 파괴임을 보여준다.
이들에게 집은 상처받은 영혼이 쉬어갈 수 있는 안식처임과 동시에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집은 ‘수백 밤을 눈물로 새운 아픔도 / 가슴에 피로 새긴 증오’까지도 ‘살갗에 묻는 가벼운 티끌’인양 여기게 하며 ‘가볍게 걸어가게 할 수 있는 곳’(신경림 <집으로 가는 길>)이 되게 한다.
그런데 그런 집이 없는 사람이 너무 많다. 그것도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며 주택보급률 110%대에 이르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집의 절대부족으로부터 비롯되지 않는다는데 있다.
최근 손현주 주연의 ‘숨바꼭질’이란 영화는 이런 집에 대한 왜곡된 집착을 다룸으로써 사회적 주목을 끌고 있다.
이 영화는 ‘우리 집에 숨어사는 누군가가 우리의 모든 것을 무너뜨린다’는 설정을 뼈대로 하고 있다.
내가 사는 우리 집에 몰래 숨어들어와 가족을 해치고 집을 차지하는 이 괴한은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에게는 매일같이 경험하는 것의 실재이기도 하다.
치솟는 물가, 절대로 반값으로 떨어지는 않는 대학등록금, 가장의 실직은 물론 시대착오적인 국가정책 등 우리의 집을 빼앗아갈 괴한들이 눈을 번득이고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럼에도 집을 매개로 한 갖가지 음모는 늘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진행되고 커진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불안하고 극단적으로 집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끔직한 공포가 현실이 되는 ‘숨바꼭질’에 매료되고 있는 것이다.
집은 생명을 잉태하고 길러내 우리의 존재를 미래로 연결하는 다리이다.
또한 배움을 이어가게 하고 사회와의 소통을 잉태하고 실현하는 곳이며 내일을 준비 하는 곳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세상으로부터 나와 내 가족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이기도 하다.
따라서 집은 치부와 축재의 수단 이전에 최소한의 삶을 영위하는 곳으로 자리매김해야한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이 집이 삶의 보금자리로써의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고 있다.
집을 향한 집착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사회가 그래서 더욱 간절하다.
국가와 사회, 미래를 준비해야하는 오늘의 우리들이 더 이상 집을 축재의 수단이 아닌 사회적 공기로 바라보아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소박하지만 안락하고 이웃을 향해 문을 열어둘 수 있는 작은 집들이 모든 이들의 삶속에 자유롭게 자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더 이상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괴한들과 맞서는 불면의 밤이 우리의 집에서 일어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