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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것들을 그냥 보내지 말자

사라지는 것들을 그냥 보내지 말자

by 운영자 2013.09.23

추석 명절을 잘 보냈는지요? 부모 형제와 만나는 즐거움과 고향을 찾는 설렘이, 주어진 삶 사랑으로 살아갈 힘을 전해주는 복된 시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랜만에 고향을 찾아가 보면 달라지는 것들이 눈에 띕니다.

마을을 지켜 오신 어르신을 비롯하여 사라지는 것들이 때마다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명절을 맞으면 마음이 오히려 허전해지는 이들이 있습니다. 누구보다 북에 고향을 두고 내려온 분들의 마음이 그렇습니다. 망연히 북쪽 하늘만 바라본 분들이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명절에 마음이 허전해지는 분들 중에는 고향마을이 수몰된 분들도 있습니다. 찾아갈 고향이 물에 잠겨버린 아픔과 아쉬움은 다른 사람들이 잘 헤아리지를 못합니다.

오래 전에 한 잡지에 이년 여 동화를 연재한 적이 있습니다. 무너져가는 농촌의 아픔을 담았습니다. 그 때 썼던 글 중의 하나가 ‘마지막 교실’인데, 수몰지역의 한 초등학교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도 어릴 적에 다녔던 마을의 초등학교가 수몰을 앞두고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문을 닫기 전날 마지막 조회를 운동장에서 모였습니다.

연단에 선 교장 선생님도, 앞줄에 선 세 명의 선생님도, 연단 앞에 쪼르르 줄 맞춰 선 스무 여명의 학생들도 마지막으로 교가를 부르다 그만 참았던 울음이 터져버렸습니다.

마지막 조회를 마치고 교실로 들어온 5,6학년 학생들은, 아직 선생님이 오시지도 않았는데 전에 없이 조용했습니다.

여느 때 같았으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체육시간 운동장 같았을 교실에 아이들은 제각기 자기 자리에 앉아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머리카락 한 올이 떨어져도 그 소리가 크게 들렸을 것 같은 교실의 조용함을 깬 건 대석이였습니다.
뒷자리에 앉아있던 장난꾸러기 대석이가 드르륵, 교실 뒷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 것입니다.

잠시 후 이번엔 앞문이 열렸습니다. 이번에도 대석이였고 다들 대석이가 장난을 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대석이 손엔 깨끗하게 빨아온 걸레가 들려 있었습니다.

대석이는 천천히 교탁을 닦기 시작했습니다. 교탁을 다 닦은 뒤 미리 전학을 가 비어 있던 책상을 닦기 시작했을 때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이들이 하나 둘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은 걸레며 비를 찾아 교실 구석구석을 청소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아이는 책상 속까지도 다 닦았습니다. 유리창이 그렇게 깨끗한 적은 전에는 없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교실로 들어서던 선생님의 발걸음이 그만 문 앞에서 멈춰서고 말았습니다. 유리창을 통해 청소를 하고 있던 아이들과 눈이 마주쳤던 것입니다.

교실 문은 한동안 열려지지 않았습니다.

교실 문을 사이에 두고 두 눈이 젖은 아이들과 선생님이 서로를 마주 본 채 다음 일을 아예 잊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교실을 정성스럽게 닦는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싶었습니다. 소중한 것들이 사라질 땐 그것을 보내는 최소한의 예의가 필요하다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한희철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