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벼와 피

벼와 피

by 운영자 2013.09.25

고향 집 앞의 논에도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지만 예년에 볼 수 없던 장면이 눈에 띄었다. 그것은 고개를 숙인 벼와 함께 서 있는 피 때문이었다.

추석 즈음 벼와 피의 상반된 모습은 종종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기도 한다. 성경의 마태복음 13장 24-30절에 나오는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도 같은 의미를 갖고 있다. 좋은 종자와 나쁜 종자는 추수할 즈음에 알 수 있다.

그 이전에는 아주 비슷해서 분간하기 어렵고, 오히려 잘못하면 좋은 종자를 뽑을 수도 있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가라지를 최후의 심판 날까지 그냥 두라고 하셨다.

좋은 종자와 가라지에 대한 비유는 불교의 인과응보와 같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누군가를 원망한다. 자신은 정상적으로 살고 있지만 상대방은 온갖 악행으로 잘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화가 치민다.

그러나 길게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인과응보와 최후의 심판을 믿는다면, 자신의 몫은 언제나 자신의 몫으로 돌아간다.

공자의 제자 중 한 사람인 증자(曾子)는 “너에게서 나온 것은 너에게로 돌아갈 것이다(出乎爾者, 反乎爾者也)”라고 말했다. 그래서 증자는 매사에 경계하고 경계하라고 말했다.

벼논에 피를 뽑을 수 없는 아버지의 모습은 안쓰럽지만, 그냥 두어도 큰 문제는 없다.

다만 당신의 건강 때문에 피를 뽑을 수 없다는 사실이 무척 가슴 아플 뿐이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내년에는 혹 벼논에 피마저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아버지가 건강하지 못하면 벼조차 심을 수 없기 때문이다. 피가 많아 벼가 성숙하지 않더라도 그런 모습만이라도 볼 수 있길 바랄 뿐이다.

논의 피를 보면서 한 세대가 끝나고 있다는 것을 절감한다. 한 세대가 끝나면 다음 세대가 다시 그 뒤를 잇겠지만, 과거의 농촌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을 것이다.

나를 비롯한 형제들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농사에 종사할 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해야 세상이 건강하듯이, 농촌의 풍경도 변하는 것이 순리이다.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사는 자가 지혜롭다.

<강판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