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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인간 강판권교수

시간과 인간 강판권교수

by 운영자 2013.10.21

인간은 시간 속에 갇혀 산다.

한 순간도 시간 밖에서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은 일상에서 시간의 굴레에서 삶을 꾸린다.

그러나 시간은 반드시 인간의 삶에서 굴레만은 아니다. 결국 인간은 시간 속에서 희로애락을 체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시간의 굴레서 벗어나는 방법은 ‘시’와 ‘간’의 차이를 아는 것이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시간을 한 묶음으로 생각할 뿐이다. 시간(時間)은 ‘때의 사이’이다. 한 시간은 1분에서 60분까지이다.

1에서 60까지의 사이가 시간이다. 시간은 결국 틈이다. 그래서 인간은 틈새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만약 틈새가 없다면 답답해서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인간(人間)도 사람과 사람의 사이를 말한다. 그래서 사람 사이에도 일정한 틈이 필요하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사이좋게’지내라는 얘기도 같은 의미이다.

틈은 인간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덕목이지만, 요즘 사회는 틈이 아주 부족하다. 사회 곳곳에서 틈이 없다보니 끊임없이 부딪치면서 불쾌한 소리가 가득하다.

요즘 틈을 중시하면서 느림의 철학을 강조하지만 느림이 곧 틈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느림과 빠름은 큰 차이가 없다. 틈은 반드시 시간의 개념이 아니라 공간의 개념도 함께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살고 있는 공간 자체가 틈을 전제한다. 그러나 인간은 틈 덕분에 살면서도 틈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우주 자체가 틈이지만, 인간은 우주 공간에 살면서 틈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다.

전통시대에는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했지만 틈 속에서 살아갔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만 틈도 없이 살아간다. 따라서 매일 틈의 소중함만이라도 인식하면서 살아간다면 행복지수는 훨씬 올라갈 것이다.

길을 걷다보면 돌 틈새에 한 포기 풀이나 한 그루가 나무가 살고 있는 장면을 만난다. 이처럼 틈은 한 생명체가 살아갈 만큼 소중한 공간이다.

그릇이 비어있기 때문에 무엇을 담을 수 있다. 그래서 공자는 군자를 불기(不器)에 비유했다. 군자는 그 어떤 것만 담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무한의 것을 담을 수 있는 존재라는 뜻이다.

가능하면 큰 틈을 만들어야 많이 채울 수 있다. 때론 빈틈없이 살아가는 것이 좋지만 때론 빈틈 있게 살아가는 것이 행복하다. 그래서 틈은 조화를 만드는 어떤 장치와 같다. 누구나 틈만 챙긴다면 조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

무척 아름다운 가을이다. 9월부터 11월 사이가 가을이다. 계절은 일정한 틈을 의미한다. 사람들이 가을을 즐길 수 있는 것도 틈 덕분이다. 틈이 없다면 계절은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한국처럼 사계절을 맛볼 수 있는 것은 큰 행복이지만, 앞으로 이 같은 행복은 누릴 수 없을 것이다. 한국도 이제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에서 사계절이 희미한 기후로 바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한국이 지금처럼 세계사에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었던 것도 사계절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인의 기질은 사계절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앞으로 사계절이 분명하지 않을 경우 분명 한국인의 기질도 바뀔 것이다.

한국인의 기질이 바뀌면 한국사회의 미래에도 큰 영향을 줄 것이다. 부디 사계절의 변화가 나쁜 쪽이 아닌 좋은 방향으로 바뀌길 기대할 뿐이다. 염원하면 이룰 수 있다.

<강판권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