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죽음도 예측할 수 있다면

죽음도 예측할 수 있다면

by 운영자 2013.10.25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의 마지막이 된 공식 일정은 삽교천 방조제와 KBS당진송신소 준공식이다.

오전 11시. 박 대통령은 현지 주민과 공사 관계자들의 환호와 박수에 손을 흔들어 답례하며 단상에 올랐다.

방조제 건설 유공자들을 표창한 뒤 치사를 통해 “국토 효용의 극대화로 자급체제를 이룩해야하며, 짜임새 있는 개발이 국토의 원천이 된다”고 강조했다.

그런 다음 친필 휘호가 새겨진 ‘삽교천 유역 농업개발 기념탑’을 제막했다.

11시 40분. 새로 건립 된 KBS당진송신소에 도착했다. 준공식 참석은 보안상 ‘비공식’ 행사로 처리되어 보도되지 않았다.

공산권에 대한 심리전방송 기간시설이기 때문이다. 송신소 준공 테이프 커팅과 정규방송 송출 버튼을 누른 뒤 기념식수를 한 것이 생 전 공식 일정의 마지막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 날, 죽음을 예고라도 하듯 불길한 징조는 곳곳에서 드러났다. 송신소 준공식에 미리 도착해 행사를 점검하던 김성진 문화공보부 장관은 “(박 대통령의)그토록 또렷하던 날카로운 눈빛이 간데없었다.

나를 바라보는 눈은 퀭하니 안광(眼光)이 비어있었다”고 회고담을 통해 밝혔다. 온천장인 도고호텔에서 점심 식사를 한 뒤 귀경하는 스케줄이다.

공군1호기가 이륙 한 뒤 수석비서관들과 경호실 수행팀이 탄 2호기가 갑자기 고장을 일으켰다. 대통령을 수행하지 못하고 수리 후 곧장 서울로 향했다.

12시 40분. 도고호텔 앞마당에 공군1호기가 도착했을 때 불상사가 발생했다. 헬리콥터 소음에 놀란 사슴이 머리로 벽을 받고 죽은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에게는 보고하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귀경길에 오른 그는 기장에게 지시했다. “아산만 쪽으로 가서 현충사 상공을 한 바퀴 돌아주게” 현충사는 충무공 이순신의 영정을 모신 곳이다.

그날 저녁 예정에 없던 궁정동 안가에서 만찬이 열렸고, 박정희 대통령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에 맞아 19시 50분 운명을 달리했다.

‘10·26 사태’ 34주년을 앞두고 퇴직언론인단체에서 문화유적탐방을 충남 당진으로 정한 것은 고(故) 박정희 대통령의 마지막 공식 일정 장소를 둘러보기 위해서다.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500년 전통의 ‘기지시 줄다리기 박물관’과 제철소도 견학 했다.

바다를 막아 거대한 담수호가 생긴 삽교천방조제는 서해안 관광명소가 됐다.

1500㎾ 송신출력을 갖춘 KBS당진송신소는 북한 전역은 물론 중국 하얼빈, 러시아 사할린 지역까지 송출된다.

앞마당에 심은 기념식수 주목과 그 옆에 ‘박정희 대통령 마지막 일자리’라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맞은 켠에는 ‘100일 추모식수 고 박정희 대통령 1980년 4월 22일 박근혜’가 새겨진 표지석 뒤로 잘 다듬어진 향나무에 눈부신 갈 햇살이 머문다.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죽음이다. 죽음도 예측할 수 있다면 통치자는 역사의 물줄기를 바꿀 수 있고, 범부도 체계적인 삶을 경영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도 피하지 못하고 거부하지 못하는 죽음 일진데, 부끄럽지 않는 삶으로 인생을 아름답게 수놓으며 사는 수밖에 없다.

<이규섭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