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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 만의 가족여행

37년 만의 가족여행

by 운영자 2013.10.31

부산의 한 바닷가에서 대학생 아들과 큰딸, 고등학교 1학년 막내딸을 데리고 나란히 선 사진 속 부모님의 얼굴이 새파랗게 젊습니다.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에 대학생이 둘, 그 와중에 어떻게 가족여행을 할 엄두를 냈을지 상상이 안갑니다. 당시 아버지가 지금의 제 나이인 54세, 어머니가 49세입니다.

그 여행을 끝으로 삼남매는 각자 알아서 친구들과 여행을 다녔고, 결혼 후에는 아들 부부가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다녀오거나 부모님이 외국에 사는 큰딸을 방문해 딸 부부의 안내로 이곳저곳 둘러보셨을 뿐 다섯 명이 함께 여행을 떠난 적은 없습니다.

이번 여행의 시작은 자매끼리의 여행계획이었습니다.

그러다 혹시나 해서 부모님께 여쭈니 91세, 86세의 노구이긴 해도 비행기를 한 시간 정도는 탈 수 있고, 잠자리가 바뀌는 것이 걱정이지만 딸들과 떠나는 것이니 그리 긴장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답을 주셨습니다.

부모님과 딸 둘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장남인 아들까지 합류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아 의논을 했고, 아들도 마침 일정을 조정할 수 있어 부모님과 삼남매가 37년 만에 가족여행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며느리와 사위는 각자 사정이 있어 함께하지 못하는 바람에 ‘원가족(原家族)’만의 여행이 되었습니다.

‘원가족’이란 결혼 전 자기 자신과 자기 부모, 자기 형제자매로 구성된 원래의 가족을 뜻합니다.

연로하신 두 분을 고려해 바쁘게 구경하는 것보다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천천히 다니기로 원칙을 세우고 제주도 2박3일 일정을 짰습니다.

마지막 여행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씀을 여러 차례 하신 부모님은 이 여행을 기다리고 상상하며 유난히 무더웠던 지난여름을 넘기셨습니다.

가을 제주는 맑고 높은 하늘, 파랗게 눈부신 바다, 선선한 바람, 밝은 햇살로 다섯 식구를 맞아주었습니다. 부모님의 걸음에 맞춰 천천히 걷고 쉬엄쉬엄 다니다보니 중년의 삼남매 또한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모처럼 느긋해졌습니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는 쉬지 않고 이야기꽃이 피어났습니다.

가난했지만 모두가 그러려니 하며 살았던 시절, 꾸중 듣고 칭찬 받았던 일들, 까맣게 잊고 있었거나 서로 다르게 기억하고 있었는데 비로소 알게 된 소소한 이야기들.

지팡이를 짚은 채 열심히 다니신 아버지, 자식들 걱정할까봐 부지런히 앞장서던 어머니, 부모님은 물론 누이 둘과 함께할 수 있어 기분 좋다며 허허 웃던 오빠, 외국에 사느라 친정 대소사에 제대로 참석하지 못한 속상함이 다 풀렸다는 언니를 보며 처음 여행 제안을 한 제 마음이 뿌듯해졌습니다.

다섯 식구 모두 잊지 못할 가족여행입니다.

<유경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