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나눔의 정’ 담긴 김장문화

‘나눔의 정’ 담긴 김장문화

by 운영자 2013.11.01

김장은 가난한 시절 겨울 양식이다. 추수가 끝난 입동 무렵이면 마지막으로 서리 맞은 배추와 무를 거둬 김장 준비를 한다.

김장 날을 잡으면 며칠 전부터 어머니의 손길은 바빠진다.

마늘을 까고 생강과 파를 다듬고 디딜방아로 고추 가루를 빻는다. 미리 준비한 소금은 쓴 맛을 가시게 간수를 빼놓아야 한다.

김장독을 묻을 김치 광 만드는 일은 아버지의 몫이다. 독 안에 볏짚을 넣고 불을 붙여 소독한 뒤 씻는다. 땅을 깊이 파고 독이 얼지 않게 짚을 두르거나 왕겨를 둘러 넣고 묻는다.

그 위에 이엉으로 상투를 틀어 움집처럼 만들고 삼각형의 문엔 드나들기 쉽게 짚으로 엮은 발을 드리워 놓는다. 겨우내 먹을 배추와 무는 구덩이를 파고 움이 트지 않게 거꾸로 세워 놓고 묻는다.

수시로 꺼내 먹을 수 있게 손이 드나들 만큼 구멍을 낸 뒤 짚이나 헌 옷을 뭉쳐 입구를 막아놓는다.

김장 전 날, 배추를 절이는 일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집 안에 우물이 없어 공동 옹달샘에 나가 씻은 뒤 지게로 져 오거나 대나무 소쿠리에 담아 날랐다.

소금으로 절여 커다란 함지박에 나뉘어 물이 빠지게 비스듬히 세워 놓는다. 씻은 무는 썰어 소금에 절이고 무청 시래기는 엮어서 뒤란에 매단다.

김장하는 날이면 이웃 아주머니들이 슬슬 모여 품앗이를 한다. 김치 맛은 소가 좌우한다. 파, 갓, 마늘, 생강, 고추 가루는 기본이고, 지역과 가정에 따라 젓갈 등 갖은 양념을 넣어 버무린다.

짠지, 싱거운지 돌아가며 맛을 보고 간을 맞춘다. 빙 둘러 앉아 절인 배추에 소를 버무려 넣는다. 김장이 끝나면 돼지고기를 삶아 속 쌈을 싸먹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에 겉절이를 걸쳐 먹는 맛은 일품이다.

아주머니들이 돌아갈 땐 김장 몇 쪽 씩 들려서 보냈다.

한겨울 곰삭은 김치와 얼음이 둥둥 뜨는 동치미, 된장찌개에 시래기 국만 있으면 농촌의 밥상은 넉넉하고 푸근했다.

한국의 전통 음식 ‘김치와 김장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가 확실시 된다는 낭보다. ‘심사 보조 기구’로부터 ‘등재 권고’ 판정을 받았고 이변이 없는 한 12월 초 확정된다.

유산균이 풍부한 김치가 세계 인류의 맛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 특히 가족과 마을 사람들이 어울려 함께 만드는 ‘김장문화’가 김치 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게 의미 있다.

심사 보조 기구는 “한국인의 일상생활에서 여러 세대를 거쳐 내려 온 김장은 이웃 간 나눔의 정신을 실천하며 연대감과 정체감을 높일 수 있게 했다”며 “자연재료를 창의적으로 이용하는 세계 다양한 공동체들 사이의 대화를 촉진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조선족 김치를 자국의 무형유산으로 지정한 중국과 일본의 기무치 등 김치 종주국 논란도 종지부를 찍을 것으로 기대된다.

해마다 김장철이면 어려운 이웃을 위해 김치를 나눠주는 아름다운 풍속은 면면이 이어져 왔다. 맛과 정이 담긴 온정의 김치나누기 운동이 올 겨울 더욱 활성화되었으면 한다.

<이규섭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