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고도 부끄럽지 않은
벌거벗고도 부끄럽지 않은
by 운영자 2013.11.13
봄과 가을이 되면 일상처럼 맞게 되는 일이 있습니다. 적잖은 결혼식 청첩장을 받게 되지요. 어떤 주에는 서너 개의 청첩장이 겹쳐 오기도 하니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축의금 때문에 적잖은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생각해보면 모두가 귀한 일, 내가 알고 있는 누군가의 자녀나 친구가 인생의 새로운 출발을 하는 순간이니 마음껏 축하를 해야 할 일입니다.
목회자로 지내다보면 결혼식 주례를 맡는 일이 많습니다. 이번 가을만 해도 거의 매주 주말이 되면 주례를 맡게 됩니다.
새로운 출발을 축하하고 축복하며, 두 사람이 살아갈 앞날을 책임 있게 바라볼 증인이 되는 것을 소중히 여기며 주례에 임하고는 합니다.
주례를 맡으면 당연히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주례사를 하는 것입니다. 어떤 말로 결혼을 축하하고 격려하고 마음에 새겨야 할 말을 전해야 할지 때마다 마음이 조심스럽고 분주해집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결혼식장에서는 짧은 주례사를 요청합니다. 식장에 도착하면 직원이 찾아와 가장 먼저 하는 말이 주례사를 짧게 해달라는 말일 정도니까요.
다음번 예식 시간이 정해져 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은 아쉽기도 합니다. 두 사람의 출발을 마음껏 축하하기에 한계를 느끼게 되기 때문이지요.
처음으로 주례를 맡은 것이 제게는 30대 초반이었습니다.
학생 때 가르친 적이 있는 이가 결혼을 하며 고집을 부렸지요. 그 고집이 하도 대단하여 뿌리칠 수가 없었습니다.
30대 초반의 젊은 목사가 주례를 맡는 것은 저 스스로에게도 몹시 어색한 일이었습니다.
주례사 시간이 되어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제가 성경 말씀 중에서 참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저를 바라보는 하객들에게 말했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아담과 하와 두 사람이 발가벗었으나 서로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말씀이 있답니다.”
순간 하객들이 표정이 어색해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젊은 목사가 주례를 맡은 것도 그러한데, 좋아한다는 성경 말씀이 하필 남자 여자가 벌거벗었으나 서로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것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겠지요.
하객들께는 해명이 되었겠지만 실은 신랑 신부에게 하고 꼭 하고 싶었던 말을 이어서 했습니다. “처음 지음 받은 두 사람은 벌거벗었어도 서로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했습니다.
오늘 결혼하는 두 사람도 있는 모습 그대로 서로를 바라보아도, 무엇으로 가리거나 감추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 서로를 바라보아도 무엇 하나 부끄러울 것이 없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부족함이 있고 실수가 있고 약점이 있다 하여도 사랑하는 사람 앞에 있는 모습 그대로 설 수 있는, 그렇게 서는 사람을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할 수 있다면 말이지요.
너무도 많은 것으로 서로를 감추고 가리고 살아가는 우리들이기에 있는 모습 그대로 마주하는 모습은 더욱 소중하게 여겨집니다. 모든 잎을 떨어뜨리고 빈 가지로 서는 늦가을의 나무가 말을 걸지 싶습니다.
정직한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이지요.
<한희철목사>
축의금 때문에 적잖은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생각해보면 모두가 귀한 일, 내가 알고 있는 누군가의 자녀나 친구가 인생의 새로운 출발을 하는 순간이니 마음껏 축하를 해야 할 일입니다.
목회자로 지내다보면 결혼식 주례를 맡는 일이 많습니다. 이번 가을만 해도 거의 매주 주말이 되면 주례를 맡게 됩니다.
새로운 출발을 축하하고 축복하며, 두 사람이 살아갈 앞날을 책임 있게 바라볼 증인이 되는 것을 소중히 여기며 주례에 임하고는 합니다.
주례를 맡으면 당연히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주례사를 하는 것입니다. 어떤 말로 결혼을 축하하고 격려하고 마음에 새겨야 할 말을 전해야 할지 때마다 마음이 조심스럽고 분주해집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결혼식장에서는 짧은 주례사를 요청합니다. 식장에 도착하면 직원이 찾아와 가장 먼저 하는 말이 주례사를 짧게 해달라는 말일 정도니까요.
다음번 예식 시간이 정해져 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은 아쉽기도 합니다. 두 사람의 출발을 마음껏 축하하기에 한계를 느끼게 되기 때문이지요.
처음으로 주례를 맡은 것이 제게는 30대 초반이었습니다.
학생 때 가르친 적이 있는 이가 결혼을 하며 고집을 부렸지요. 그 고집이 하도 대단하여 뿌리칠 수가 없었습니다.
30대 초반의 젊은 목사가 주례를 맡는 것은 저 스스로에게도 몹시 어색한 일이었습니다.
주례사 시간이 되어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제가 성경 말씀 중에서 참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저를 바라보는 하객들에게 말했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아담과 하와 두 사람이 발가벗었으나 서로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말씀이 있답니다.”
순간 하객들이 표정이 어색해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젊은 목사가 주례를 맡은 것도 그러한데, 좋아한다는 성경 말씀이 하필 남자 여자가 벌거벗었으나 서로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것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겠지요.
하객들께는 해명이 되었겠지만 실은 신랑 신부에게 하고 꼭 하고 싶었던 말을 이어서 했습니다. “처음 지음 받은 두 사람은 벌거벗었어도 서로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했습니다.
오늘 결혼하는 두 사람도 있는 모습 그대로 서로를 바라보아도, 무엇으로 가리거나 감추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 서로를 바라보아도 무엇 하나 부끄러울 것이 없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부족함이 있고 실수가 있고 약점이 있다 하여도 사랑하는 사람 앞에 있는 모습 그대로 설 수 있는, 그렇게 서는 사람을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할 수 있다면 말이지요.
너무도 많은 것으로 서로를 감추고 가리고 살아가는 우리들이기에 있는 모습 그대로 마주하는 모습은 더욱 소중하게 여겨집니다. 모든 잎을 떨어뜨리고 빈 가지로 서는 늦가을의 나무가 말을 걸지 싶습니다.
정직한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이지요.
<한희철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