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가치(價値)는 삶의 시·공간(時·空間)의 존중에?
사람의 가치(價値)는 삶의 시·공간(時·空間)의 존중에?
by 운영자 2013.12.30
<문덕근>
ㆍ전남교원단체총연합회장
ㆍ전남자연학습장관리소장
ㆍ교육학박사
화가는 사물의 배치에 꽤나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고 한다.
비스듬한 곳에서만 보이도록 하거나 혹은 일부러 멀리에 두기도 하며, 아침 일출을 고려하기도 하고, 햇빛의 그림자까지도 염두에 두고 배치한단다.
우리도 이처럼 화가와 비슷한 방식으로 삶을 배치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는 않은가?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바라는 대로 하기도 하고, 싫으면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또한 자신이 간절히 원한다거나 혹은 필요에 의해 자신의 삶을 디자인하는 것도 가능하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은 자신이 도덕적으로나 지적으로나 더 나아가 권력이 절대적으로 타인보다 우위에 있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권한은 결코 없을 것이다.
목회자의 가정에서 태어난 빈센트 반 고흐는 자신의 예술성을 제대로 이해해주지 못한 채 그저 바른 삶을 살아가기를 원했던 부모님과 갈등이 있었다.
수많은 그림들을 그렸지만 작품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결국 가난한 삶을 자신의 손으로 마감한 고흐는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세상을 등지고 난 후에야 작품의 가치를 높이 평가받았다.
한 인간의 가치는 그가 무엇을 받을 수 있느냐, 누릴 수 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줄 수 있느냐로 판단된다고 한다.
사람이 얼마나 가치 있는가는 그 사람의 감정과 사고와 행동이 타인에게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가에 달려있다고들 말한다.
정치인이라는 이유로 국민이 원하지 않는 정책을 무작정 추진하는 것도, 자신이 교사라는 이유로 학생들이 바라지 않는 것을 무조건 시킬 수도 없는 일이다.
역지사지로 유권자가 정치인에게 청탁을 하는 것도, 학생이라고 해서 무조건 선생님에게 떼를 쓰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 시대는 마치 우상을 짊어지고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것과 흡사하다. 강남의 목 좋은 곳에 위치한 집 한 채와 더불어 일류 대학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사교육에 목숨을 내걸고, 더 나아가 권력을 향해 몸부림치며 헛된 자존심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참 답답하다.
어른이란 생각과 행동이 성숙한 사람이다. 그러나 우리는 마음이 제대로 성장한 그런 어른을 만나기가 어려운 것 같다.
어른다운 어른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배우지 못하고 어른들의 잘못된 행동을 본 대로 따라한다.
사고화 과정이 없이 행동으로 옮겨지고, 그렇게 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외모만이 아니라 정신이 어려지고 있는 이 시대, 정말 두려운 것은 공론장에서 궤변, 언어폭력, 몰상식이 넘쳐나는데 그걸 바로 잡고 더 나은 길로 이끌 어른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수능이 끝나고 난 후 평소 몸 짱이 되고 싶은 청소년들은 자신의 몸을 가꾸기 위해 많은 시간과 물질을 투자하는 노력을 기울인다.
이러한 청소년들의 행동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몸을 중시하는, 즉 물질을 중시하는 어른들의 생각과 행동을 무조건 따라 하는 사고 없는 논리에서 온 것일 것이다.
경쟁의 시대이기 때문에 친구도 경쟁자일 뿐이다. 그래서 친구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입으로는 ‘축하한다’고 말하지만 자신의 얼굴은 패자의 모습을 감추지 못한 채 일그러지고 만다.
혹여 우리 모두가 그러한 길로 매진하도록 부추기고 있지는 않은가? 종종 타인과의 힘든 관계가 스트레스가 되어 우울증에 빠져드는 현대인들을 만나기도 한다.
요즈음 심리학과 철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반갑고 바람직한 현상이다. 심리학이 사람의 생각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면 철학은 인간다움에 대해 고민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타인과의 소통에서 상처받지 않고, 진실로 인간적인 사람이 되고자 하는 바람의 귀결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삶은 꼭 노력한 만큼의 결실을 주는 건 아닌가 보다. 타인에 대한 이해도 저 자신에 대한 인간성 회복도 순간순간 부딪히는 삶의 부조리를 겪고 나면 애초에 노력은 온 데 간 데 없고 험상궂은 얼굴과 냉소로 가득 찬 모습만 남게 되니 말이다.
모든 말과 행동은 그 사람의 과거 또는 현재와 연결되어 있다. 한 사람의 말, 행동, 태도 등은 그 사람의 과거 관계 방식에 영향을 받는다.
부모, 친구, 선생님, 동료 등이 그에게 어떻게 대해주었는가? 읽은 책이나 본 영상, 만난 사람, 본 것, 들은 것, 본 표정 등이 현재의 그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예기(禮記)』에 ‘세상에 존경을 표하지 않을 것이 없다. 모든 것을 존경해야 한다.’라는 의미인 ‘무불경(毋不敬)’이라는 구절이 있다.
길가에 피어오르는 코스모스, 떨어지는 빗방울 하나도 전부 경의를 가지고 바라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주위의 사물이나 동물이 아무것도 아니면 인간인 우리 또한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건축가의 도덕이란 집을 짓고 난 뒤 터전을 깔끔히 치우는 것이고, 원예가의 도덕은 나뭇가지를 자른 뒤 떨어진 가지를 청소하는 것이다.
늘 기분 좋은 인생을 살아가가 위한 요령은 누군가의 힘이 되어 주는 일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언제나 어디서나 자신의 가치와 역할을 존중하는 삶이야말로 참된 어른의 그림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