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끊고 싶지 않은 끈

끊고 싶지 않은 끈

by 운영자 2014.04.30

<한희철목사>
- 성지감리 교회 담임목사
- 흙과 농부와 목자가 만나면의 저자

세월호가 바다에 잠긴 순간부터 이 땅은 슬픔에 잠겼습니다. 활짝 핀 꽃을 보아도 즐겁지 않고, 마른 땅에 내리는 비도 반갑지가 않습니다.

피지도 못한 채 사라져간 학생들 생각이 송이송이 꽃에 어리기 때문이며, 이 비가 팽목항 앞에도 내리겠지 싶은 생각이 절로 들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많은 꿈이, 얼마나 많은 사랑과 사연들이 사라진 것일까요? 들려오는 소식마다, 보게 되는 장면마다 기가 막히고 마음이 아파 나도 모르게 한숨이 터지고 눈가가 젖곤 합니다.

산마다 골짝마다 산벚꽃 눈부시게 번지고 있는 이 때 감당하기 힘든 슬픔이 맹골의 물살보다 빠르게 온 나라를 눈물로 적시고 있습니다.

무엇 하나 다를 것 없는 슬픈 소식 중에서도 유난히 마음 아프게 다가온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침몰한 세월호 내부에서 구명조끼 끈으로 서로를 묶은 채 발견된 남녀 학생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시신 2구를 발견했는데 위 아래로 각각 한 개씩 달린 구명조끼 끈 중에서 위쪽 끈은 각자 허리에 묶었지만 아래쪽 끈은 서로에게 연결이 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실종자를 찾기 위해 어렵게 선실로 진입한 한 잠수사 눈에 신발 두 짝이 눈에 들어왔답니다. 그가 이번 구조작업에서 만난 첫 시신이었는데, 부유물을 밀쳐내니 청바지 차림에 구명조끼를 입고 있는 남학생이었습니다.

잠수사는 눈을 감고 손을 모아 고인에 대한 예를 표한 후, 시신 수습 관행대로 남학생을 밀어 배 밖으로 나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뭔가 묵직한 느낌이 들더랍니다. 확인해보니 길이 1m가량 되는 구명조끼 아래쪽 끈에 뭔가가 연결돼 있었는데, 끈을 당기자 맨발 상태의 여학생 주검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을 한꺼번에 끌고 나가기에는 너무 무거워 연결된 끈을 조심스럽게 푼 뒤 남학생부터 배 밖으로 밀어낸 후 여학생을 데리고 나왔다는데, 잠수사는 그 순간 일생에서 가장 놀랍고 가슴 뭉클한 순간을 물 속에서 맞이했다고 했습니다.

웬일인지 남학생 시신이 수면 위로 잘 떠오르지 않았던 것인데, ‘이 아이들이 떨어지기 싫어서 그러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눈물이 났다고 했습니다. 잠수사가 전하는 말을 대하며 눈물이 났습니다.

단원고 정문 담벼락에 붙은 한 여학생의 글도 마음을 참 아프게 했습니다. 자신의 짝사랑을 고백하며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는 내용이었습니다.

‘1년 전부터 널 몰래 좋아했었어’, ‘사랑한다고 고백하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왜 안 오는 거야!!’, ‘내 고백 받아주지 않아도 괜찮으니깐 어서 돌아와… 그냥 옆에서 몰래 바라만 봐도 난 행복하니까 제발 돌아와’, ‘그냥 쳐다볼 수 있는 기회라도 줘! 그만 애태우고 어서 돌아와 줘… 너의 그 환한 웃음 보고 싶단 말이야’ 여학생의 편지는 이렇게 끝났습니다.

‘진작 사랑한다 말할 걸. 진작 좋아한다 고백할 걸… 너무 후회가 돼. 보고 싶어’ 세상의 무엇으로도 끊고 싶지 않은 소중한 끈들이 허망하게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사죄하는 심정으로 끊어진 끈을 다시 잇는 것은 이제 남은 자의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