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DDP외관 패널 화재 땐 ‘패닉’

DDP외관 패널 화재 땐 ‘패닉’

by 운영자 2014.05.16

<이규섭시인>
- 월간 <지방의 국제화>편집장
- 한국신만방송인클럽 상임이사
- 저서 별난 사람들, 판소리 답사기행 등

“우주선 같다는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를 둘러봐야 문화인 아닌가?” “한 번 쯤 봐주는 게 서울시민의 예의지” 늙은이 몇 명이 작당하여 지하철 2·4·5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1번 출구에서 만나기로 했다.

기억력 가물거리는 노인에겐 역 이름 조차 기억하기 벅차다.

역사와 문화, 공원을 두루뭉술 얼버무려 놓아 생뚱맞다. 우주정거장도 아닌데 휴대폰으로 각자의 위치를 파악한 뒤 어렵사리 접선했다. 안내지도를 챙겼어도 동선이 복잡해 헷갈린다.

안내데스크 도우미가 지도에 형광펜으로 그려주는 대로 ‘배움터’부터 둘러봤다. ‘간송문화전’이 열리는 디자인박물관과 ‘디자인 둘레길’이 있는 메인 공간이다.

둘레길은 바닥과 천장 벽면 모두 하얗다.

천정 조명은 우주선이 길게 꼬리를 남기듯 흐른다. 모퉁이를 돌때마다 비치해 놓은 의자 디자인도 독특하다.

비스듬히 경사를 유지하며 533m의 높이라는데 어디쯤 올라왔는지 분간이 안 된다. 창문이 없어 답답하다.

어지럼증이 인다. 착시현상이다.

4층에서 지하 2층까지 이어지는 유선형 계단은 아래 위층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구조로 꾸몄다.

디자인놀이터에서 밖으로 나오니 잔디언덕과 연결된다. 알림터와 살림터는 대충 둘러본 뒤 고래 뱃속 같은 미로의 공간을 빠져 나왔다.

이라크 출신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DDP는 세계 최대 규모의 3차원 비정형 건축물로 서울의 명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고교야구의 함성이 울려 퍼지던 동대문운동장자리에 불시착해 역사와 기억을 깔아뭉갰다.

한양도성의 물을 성 밖으로 내보냈던 이간수문(二間水門)과 조선시대 왕의 호위를 맡았던 하도감(下都監) 터는 성곽 밖으로 밀려났다. 발굴된 유적들도 여기저기로 옮기고 터를 덮어버렸다.

600년 역사 유적인 한양도성 성곽은 퇴락한 돌담처럼 흔적만 남겼다. 동대문운동장의 조명탑이라도 남겨놓았더라면 서울의 스토리가 될 수 있을 터인데 아쉽다.

대지면적 6만2692㎡에 4840억 원을 들여 지은 거대한 건물이 ‘세금 먹는 하마’로 애물단지가 되지 않으려면 지속적인 활용방안이 모색돼야 한다.

전시와 국제회의, 이벤트 위주라면 코엑스나 킨텍스 같은 편리한 공간은 얼마든지 있다. ‘함께 만들고 누리는 디자인 메카’에 걸맞는 다양한 기획이 필요하다. 콘텐츠가 없으면 사람의 발길이 끊기기 마련이다.

축구장 3배 규모인 외관은 크기와 디자인이 각기 다른 알루미늄 패널로 장식해 곡선이 아름답고 웅장하다. 문제는 화재가 발생했을 때 허점이 많다는 지적이 나왔다.

소방당국의 보고서에 따르면 돔 건축 양식으로 지붕에 창문이 없어 건물 밖에서는 기본적인 화재 상황조차 파악하기 어렵고 인명구조에 한계가 있다고 한다.

패널을 떼어내도 그 안에 콘크리트와 단열재가 있어 창문과 옥상을 통한 구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니 패널로 패닉(극도의 혼란)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곡선미를 살린 내부 계단은 디자인적으로는 아름답지만 신속한 화재 대피에는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건물 구조에 따른 화제대응 방안이 강구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