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생명 탄생의 신비

생명 탄생의 신비

by 운영자 2014.05.20

<유경작가>-가천의과대학교 초빙교수
- 노인대학 및 사회교육 프로그램 강사
- 저서 유경의 죽음준비학교, 마흔에서 아흔까지 등


꽃이 지고 난 자리에서 잎이 더 푸르러지듯이, 꽃 같은 생명들이 쓰러진 후에도 새 생명은 망설임 없이 태어나 주위를 환히 밝힙니다. 보름 전쯤, 집에서 기르고 있는 개가 새끼를 낳았습니다.

어린 시절 마당에서 기르던 개가 그랬듯이 출산의 모든 과정을 스스로 다 알아서 할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래서 아무 걱정 없이 마음을 턱 놓고 있었는데 자연의 법칙과는 다르게 스스로 전혀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전날부터 진통이 시작돼 눈물까지 흘리며 쩔쩔매는 개 옆에서 이제나 저제나 하며 기다리다 지쳐 새벽에 깜빡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제 옆에 새끼 한 마리가 태어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글쎄 어미는 잇따라 나온 태반을 끊어줄 생각은 아예 없는 듯 저만치 떨어져 자기 몸만 열심히 핥고 있습니다.

부랴부랴 냄비에 물을 팔팔 끓여 가위를 삶아 들고는 강아지 탯줄을 실로 묶은 후 잘랐습니다. 손이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이어서 태어난 두 마리는 숨을 제대로 쉬지 않아 강아지 코에 딸아이가 입을 대고 빨아주니 그때서야 ‘캑!’ 소리를 내며 숨을 토해냅니다.

또다시 탯줄을 잘라주고는 젖은 몸을 수건으로 닦는다, 헤어드라이어로 말린다, 새벽 내내 야단법석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어미를 꼭 닮은 새끼 세 마리를 얻었습니다. 저와 두 딸 모두 밤을 꼬박 새웠지만 힘든 줄도 몰랐습니다.

기대와 흥분과 두려움이 지나가고 나니 생명의 신비에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완벽한 개의 형상을 하고 태어난 것을 보며 창조의 신비에 감탄했습니다.

산고가 너무 심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아직 어려서 철이 없어 그랬는지 어미가 젖을 물리려 들지 않아 며칠 고생을 했지만 보름이 다 되어가는 지금은 세 마리에게 젖을 물린 채 편안하게 누워있는 모습이 의젓하기만 합니다.

임신을 해 배가 불러오고 진통 끝에 새끼를 낳는 모든 과정을 함께했고, 연약하게 태어난 어린 생명이 어미 품에서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나는 것을 매일같이 지켜보고 있는 이십대 딸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생명 사랑 생명 존중의 체험은 없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언젠가는 겪게 될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상상해보는 것은 물론 하루 종일 젖을 빨리며 새끼를 핥아주고 한시도 눈을 떼지 않는 어미 개에게서 모성의 원형을 배우기도 할 겁니다.

창밖에는 장미가 활짝 피었고 저희 집 마루에서는 꽃 같이 예쁜 강아지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생명에게서 이 봄의 아픈 가슴이 큰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참으로 고마운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