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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에 주어진 거룩한 의무

우리 삶에 주어진 거룩한 의무

by 운영자 2014.05.21

답답하고 괴롭고 슬프고 미안하고, 계절(季節) 때문이겠지요, 뭐라도 마음에 위로가 되는 것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꺼내든 책이 <명심보감>입니다.

‘명심보감’이라는 말은 ‘마음을 밝혀주는 보배로운 거울’이라는 뜻, 오늘 우리의 모습을 비춰볼 수 있는 글을 만나지 않을까 싶은 기대가 책을 대하는 순간 마음을 지났습니다.

명심보감이라는 책을 어렵게 구한 율곡 선생은 책을 애독한 뒤 서문과 발문을 적으며 ‘옛 사람이, 후학들이 이(利)를 따르고 의(義)를 잃어버릴까 우려하여 지었다’ 밝혔다 합니다.

율곡 선생이 염려했다는 이(利)를 따르고 의(義)를 잃어버린 모습은 오늘 이 시대의 자화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찬찬히 읽는 글, 오래 전에 밑줄을 그은 문장들에 더욱 눈이 갑니다. ‘교우편’(交友篇)에 담긴 글들이 더욱 그랬습니다.
‘상식(相識)이 만천하(滿天下)하되 지심능기인(知心能幾人)고’라는 구절이 먼저 눈에 띕니다.

‘얼굴 아는 이야 세상에 가득하되 마음 아는 이는 과연 몇 사람이나 될까?’ 하는 뜻이었습니다.

내 얼굴과 이름 아는 자는 세상에 많을지 몰라도, 내 마음을 아는 자는 찾기가 쉽지 않은 세상이지요. 그래서 모두가 외로운 삶을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고요.

‘주식형제(酒食兄弟)는 천개유(千個有)로되, 급난지붕(急難之朋)은 일개무(一個無)니라’는 구절이 아프게 다가옵니다.

‘술 마시고 밥 먹을 때의 형제는 천 사람이나 있더니만, 위급한 때의 벗은 하나도 없구나’ 하는 뜻이었습니다. 내 형편이 넉넉하고 좋아 술 사주고 밥 사줄 때는 친구들이 많더니, 막상 어려움이 닥치게 되자 그 많던 친구들을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아픈 현실을 그림처럼 담고 있다 싶었습니다.

어려움을 당했을 때의 벗이 참된 벗임을 마음에 새기게 합니다.

‘노요(路遙)에 지마력(知馬力)이요, 일구(日久)에 견인심(見人心)이라’는 구절도 실감 있게 다가왔습니다. ‘길이 멀면 말의 힘을 알게 되고, 날이 오래면 사람의 마음을 알게 된다.’는 뜻입니다.

말의 힘이 얼마나 좋은지는 먼 길을 가보면 자연스레 알게 됩니다.

사람의 마음을 제대로 알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랜 시간을 함께 해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됩니다.

처음엔 좋아 보여도 함께 시간을 지내다 보면 단점과 한계가 드러나는 경우들을 어렵지 않게 경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도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정말 알 수가 없는 것이구나 싶었습니다.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일을 경험하면서도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 다양하고 이렇게 다를 수 있는 건가 놀라게 됩니다.

당연히 다른 사람을 살려야 할 이들은 나만 살기 위해 서둘러 빠져나왔고, 생각지 못한 이들이 끝까지 남아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내 목숨을 버리기도 했습니다.

나와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낸 이가 나를 통해 삶의 깊은 향기를 맡을 수 있을 만한 삶을 사는 것, 그것이 우리 삶에 주어진 거룩한 의무가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