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by 운영자 2014.05.23

‘중용(中庸) 23장’에 끌려 영화 ‘역린(逆鱗)’을 봤다. ‘작은 일에 정성을 다해야만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대사가 세월호 참사와 메시지가 겹치면서 SNS와 인터넷을 통해 큰 공감 얻고 있다는 신문 리뷰를 읽고 나서다.‘역린’은 조선 22대 임금 정조 암살미수사건인 ‘정유역변’이 큰 줄기다. 정조는 즉위 일성으로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고 선언한다. 아버지를 뒤주에 갇혀 죽게 한 노론세력들에 대한 선전포고나 다름없었고 정조 암살계획의 빌미가 됐다. 즉위 1년인 1777년 음력 7월28일 밤 11시, 정조는 침소인 존현각(尊賢閣)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그 때 지붕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고 기왓장 깨지는 소리가 났다. 소리를 지르자 호위병들이 달려왔다. 총과 칼, 화살이 오가는 혈투가 벌어지고 정조도 신궁 솜씨를 발휘한다.

정조는 세 차례에 걸친 암살시도에도 목숨을 부지한 결말을 알기에 긴장감은 떨어진다. 정조 역을 맡은 현빈은 제대 후 복귀 작품이자 첫 사극출연으로 화제를 모았다.

노론세력에 맞서는 청년 정조를 무난히 소화했다. 초호화 캐스팅은 오히려 용의 턱밑에 난 거꾸로 된 비늘 ‘역린’처럼 역효과다. 감독은 드라마 PD출신답게 여러 인물에 앵글을 맞추다 보니 곁가지가 많은 게 흠이다.

영조는 대표적 개혁군주다. 규장각을 국립기관으로 확대 개편하여 학자를 양성하고 경연(經筵)을 자주 열었다. 선대의 탕평책을 이어 받아 정약용 등 남인을 등용하고 이덕무·박제가 등 서자를 중용했다.

상공업 중심의 실용 개혁론을 주창한 북학파가 여기서 나왔다. 수원화성 축조 때는 정약용이 왕명을 받아 개발한 포크레인 격인 거중기를 활용했다.

과학적인 설계도를 만들고 공사실명제를 도입했다. 정당한 임금지불로 인부들의 사기를 높여 공기를 단축시켰다. 전돌과 삼화토를 이용한 독창적 디자인으로 동양성곽의 백미로 꼽혀 1997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성곽을 실용적 구도로 축조한 안목이 놀랍다. 정조가 젊은 나이에 이름 모를 병으로 세상을 뜨자 정국은 시파와 벽파로 갈려 혼란이 일었다. 정조 치세 24년은 기득권층의 집요한 저항에 밀려 물거품이 된다.

영화에서 정조는 ‘중용 23장’을 노론세력 공격의 장치로 활용한다. 임금의 입지를 좁히려는 신하에게 “중용 23장을 아느냐”고 압박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중략>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엔딩부분에 현빈의 목소리로 나래이션이 흐르며 그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중용은 치우치지 않고 지나치거나 모자람 없이 일상생활에서 지켜야 할 기본적 도리다. 평상시 각자의 위치에서 지켜야 할 도리와 책무를 다했다면 세월호 참사는 막을 수 있었다.

대통령이 눈물로 사과하고 안전대책을 내놓았다. 세상을 변화 시키려면 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도 바뀌어야 하겠지만 국민의 의식도 변해야 한다.

슬픔과 분노, 좌절과 갈등을 극복하고 희망의 불씨를 지피며 중용의 지혜로 정성과 노력을 쏟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