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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연 계곡

어라연 계곡

by 운영자 2014.05.26

청산을 / 넘지 못해 / 물소리로 / 우는 강물, // 강물을 / 건너지 못해 / 바람소리 / 우는 저 산 // 아득히 / 깊고도 푸른 정 / 한 세월을 삽니다- 졸시 「어라연 계곡」, 전문

아직도 단종의 슬픔이 서려 있는 영월의 청령포와 어라연 계곡을 찾아 단종의 유배지에 가는 길가에는 먼저 왕방연의 시비가 눈에 들어왔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님 여의옵고 /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 저 물도 내안 같아야 울어 밤길 예놋다’라는 시조이다.

섬기던 임금을 강 너머에 두고 가야하는 그의 안타까운 마음을 알 것도 같다.
늘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강물은 청령포를 에워싸고 오늘도 말없이 흐르는데, 나루터에서 강 건너 청령포를 바라보는 마음은 눈물겹다.

이곳은 조선의 6대 임금인 단종이 12살 어린 나이에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유폐된 곳이다.

17살 관풍헌에서 사약으로 죽임을 당하기까지 그는 어떤 운명을 타고 났기에, 이곳에서 몸부림치다 그토록 서럽고 짧은 생을 마감해야 했는가.

산세와 풍광은 더없이 아름다운데 금족력이 내렸을 당시의 노산군에겐 아름다움이 아름다움으로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노산대로 길목에는 영조 2년(1726년)에 세운 금표비가 있는데, ‘동서남북 사방 각각 사백 구십 척 이내 일반 백성 접근 금지’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노산군이 죽은 지 2백 년 후에 세운 것이라지만 그 당시 노산군에게도 이 같은 금족령이 내려졌을 것이다.

타인과의 접촉이 차단된 강요된 외로움은 사춘기 소년에게 얼마만한 고통이었을까. 노산군이 앉아 깊은 시름을 달랬다는 관음송을 바라보며, 또 노산군이 하루에도 몇 번씩 서쪽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올라 한양의 하늘을 바라보다 돌들을 주워와 탑을 쌓으며 외로움을 달래고 왕비인 정순왕후 송씨를 그리워했다는 망향탑을 둘러보며, 사춘기의 한 소년이 겪었을 아픔과 외로움과 한을 생각하니 목이 메인다.

강 아래로 한없는 그리움과 절망이 유유히 흘러가고 있을 때 가질 수 없는 세속적인 감정과 욕망을 초월하여 그도 하나의 망향탑 돌이 되어 갔을까.

청령포라는 유폐된 공간에서 그가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신이 하나의 자연이 되어 이곳의 풍경과 일체가 되는 것 밖에 없었으리라.

‘원통한 새 한 마리 궁중에서 나온 뒤로 / 외로운 몸 쪽그림자 푸른 산을 헤매누나 / 밤마다 잠 청하나 잠들 길 바이 없고 / 해마다 한을 끝내려 애를 써도 끝없는 한이로세 / 울음 소리 새벽 산에 끊어지면 지는 달이 비추이고 / 봄골짝에 토한 피가 흘러 떨어진 꽃 붉었구나 / 하늘은 귀먹어서 저 하소연 못 듣는데 / 어쩌다 서러운 이 몸 귀만 홀로 밝았는고. - 「자규시」 전문, 단종’

단종이 죽던 날, 시녀와 종인들이 다투어 고을 동강에 몸을 던져 시체가 강에 가득하였고, 이날에 뇌우가 크게 일어 지척에서도 사람과 물건을 분별할 수 없고 강렬한 바람이 나무를 뽑고 검은 안개가 공중에 꽉 끼어 밤이 지나도록 걷히지 않았다고 한다.

권력이란 어떤 매력이 있는 것일까? 남의 섬김을 받는다는 것이 그렇게 좋을까. 자기의 뜻대로 세상을 움직여 보는 것이 그토록 매력적일까. 역사적 비극이 서린 곳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에 잠겼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