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이불견 청이불문(視而不見 聽而不聞)
시이불견 청이불문(視而不見 聽而不聞)
by 운영자 2014.06.02
가느다란 가지 끝에 열일곱 개의 작은 머루 송이가 달려 있다. 지나가는 사람이 겨우 요것 달았냐고 묻는다. 겨우 요것 달았어?
최선이었어요.
그랬구나……
몰랐어. 미안해
이철수의 <가난한 머루송이에게>라는 작품이다.
이는 자연을 향해 말을 걸어야 하는 그리움의 노래다. 이러한 말 걸기는 배움이고 공명이며 깨달음이다.
이런 공명과 깨달음이 인생을 만들어간다. 우리 아이들이 열심히 배워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왜 배워야하는지의 울림과 깨달음이 없으면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다.
교육자의 한 사람인 나에게 교육에 대한 큰 울림으로 다가왔던 ‘시이불견 청이불문(視而不見 聽而不聞)’이라는 말이 주는 메시지는 내 삶의 철학으로 스며들었다.
시청(視聽)은 흘려듣는 것이고, 견문(見聞)은 깊이 보고 듣는 것이다. 견문의 자세와 태도야말로 교육 중의 기본인 것이다. 기본은 끝없는 ‘반복’을 통해 습관으로 이어져 인격이 되는 것이다.
선암사 ‘홍교’ 앞에서 ‘얼른 사진 찍고 가자’는 시청이고, ‘홍교’의 내력에 대해 감동을 받은 것은 견문을 한 것이다. 보고 들은 다음에 지겹다고 하는 것은 시청을 한 것이고, 내 삶의 ‘터닝포인트(turning point)’가 되었다고 느끼는 사람은 견문을 한 것이다.
삶의 전환점이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감동받는 것이라고 한다. 감동받는 것은 만나는 모든 사람과 자연에 찰지력(察知力)을 갖는 것이다. 지식이 많은 친구들보다 감동을 잘 받는 친구들이 일도 더 잘한다고 한다.
감동을 잘 받는다는 것은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다. 그 친구들은 나뭇잎 하나에도 감탄하고 음악 하나 들으면서도 정말 좋다는 걸 안다.
그런 친구들이 일도 잘하고 인생이 풍요로운 삶을 사는 것이고, 행복함을 느끼는 것이다. 이것이 수업의 목표였으면 좋겠다.
우리의 교육 시스템이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면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있어야 한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바뀌고, 역사가 달라졌지만, 기본적인 논리나 사고는 예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다.
우리 인생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내 마음대로 직조할 수 없다. 시대라는 씨줄과 내 의지라는 날줄이 맞아야 하듯이, 사람과 자연, 앎과 삶이 우리에게 주는 물음을 무관심하게 흘려보내지 않는 자세, 삶과 관련지어보는 사고화의 과정이 필요하다.
한 외국인이 ‘헤이, 빨리 빨리’라고 부르는 소리에 뒤를 보니 자기를 부르는 것이었다는 한 친구의 외국여행담을 듣고, ‘한국의 신인도가 이렇게 높아졌구나!’ 하는 감탄과 함께 ‘빨리 빨리’가 IT 산업을 선도했다는 자긍심을 느끼면서도, 외국인의 눈에 비치는 ‘빨리 빨리’가 한국인의 대명사가 되었고, 한국에 가면 ‘총알택시’를 조심해야 된다는 외국인의 당부에 여러 가지 상념으로 어수선하다.
요즈음 세 ‘아이(I)’가 문제라는 이야기가 시중에 돌고 있다.
첫째, ‘IQ’의 과신이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출연한 TV프로그램에서 사회자들은 보통 자녀의 IQ를 물어 보는데, IQ가 높은 자녀를 둔 부모들은 대단한 자랑으로 여기는 것을 볼 수 있다.
실제로 공부와 미래 성취에 미치는 순서는 자신의 노력(45%), 학습 동기(25%), IQ(20%) 등으로 밝혀지고 있다는 소리에 깊은 공명이 있어야 한다.
둘째, ‘Industry(산업)’의 발달로 인한 상품 중시의 사회이다. 명품을 갖지 않으면 행세가 어렵다는 정도로까지, 더 나아가 자녀가 명품을 만지다가 훼손시키면 심하게 나무라게 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이럴 경우, 자녀들은 자신보다 명품이 더욱 중요시 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더 심한 경우 자신을 물건보다 더 못한 사람으로 인식하게까지 되는 것이다. 물건은 사용하고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데, 사람은 사용하고 물건을 사랑하는 것은 아닌지 씁쓸하다.
셋째, ‘Instant(인스턴트)’의 상용화이다. 요즈음 즉석 식품이 활개를 치고 있다고 한다. 물에 빨리 부풀게 하기 위해서 수소까지 식품에 넣는다고 한다. ‘즉석이나 빠르게’라는 말만 있지, 정성, 인간성, 사랑, 국민의 건강, 안전은 안중에 없다. 누구를 위한 ‘즉석이나 빠르게’인가?
부드러운 이슬비가 한번 내리면 풀밭은 한층 더 푸르러진다. 우리 역시 보다 훌륭한 생각을 받아들이면 우리의 전망도 훨씬 밝아질 것이다.
자신의 몸 위에 떨어진 한 방울의 작은 이슬도 놓치지 않고 받아들여 커가는 풀잎처럼 우리에게 던져지는 물음이 주는 지혜를 모든 일에 최대한으로 이용할 수 있다면!
티끌이 모여 태산이 되고 작은 물방울이 모여 장강을 이룬다고 한다. 나에게 주어진 조건, 주어진 시간을 더없이 소중하고 감사하게 받아들일 때 우리 아이의 얼굴에 미소가 번질 것이다. 그런 깨달음을!
지식을 쌓으면서 내어주고 있는 것은 없는가를 항상 생각하는 학교!
최선이었어요.
그랬구나……
몰랐어. 미안해
이철수의 <가난한 머루송이에게>라는 작품이다.
이는 자연을 향해 말을 걸어야 하는 그리움의 노래다. 이러한 말 걸기는 배움이고 공명이며 깨달음이다.
이런 공명과 깨달음이 인생을 만들어간다. 우리 아이들이 열심히 배워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왜 배워야하는지의 울림과 깨달음이 없으면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다.
교육자의 한 사람인 나에게 교육에 대한 큰 울림으로 다가왔던 ‘시이불견 청이불문(視而不見 聽而不聞)’이라는 말이 주는 메시지는 내 삶의 철학으로 스며들었다.
시청(視聽)은 흘려듣는 것이고, 견문(見聞)은 깊이 보고 듣는 것이다. 견문의 자세와 태도야말로 교육 중의 기본인 것이다. 기본은 끝없는 ‘반복’을 통해 습관으로 이어져 인격이 되는 것이다.
선암사 ‘홍교’ 앞에서 ‘얼른 사진 찍고 가자’는 시청이고, ‘홍교’의 내력에 대해 감동을 받은 것은 견문을 한 것이다. 보고 들은 다음에 지겹다고 하는 것은 시청을 한 것이고, 내 삶의 ‘터닝포인트(turning point)’가 되었다고 느끼는 사람은 견문을 한 것이다.
삶의 전환점이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감동받는 것이라고 한다. 감동받는 것은 만나는 모든 사람과 자연에 찰지력(察知力)을 갖는 것이다. 지식이 많은 친구들보다 감동을 잘 받는 친구들이 일도 더 잘한다고 한다.
감동을 잘 받는다는 것은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다. 그 친구들은 나뭇잎 하나에도 감탄하고 음악 하나 들으면서도 정말 좋다는 걸 안다.
그런 친구들이 일도 잘하고 인생이 풍요로운 삶을 사는 것이고, 행복함을 느끼는 것이다. 이것이 수업의 목표였으면 좋겠다.
우리의 교육 시스템이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면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있어야 한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바뀌고, 역사가 달라졌지만, 기본적인 논리나 사고는 예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다.
우리 인생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내 마음대로 직조할 수 없다. 시대라는 씨줄과 내 의지라는 날줄이 맞아야 하듯이, 사람과 자연, 앎과 삶이 우리에게 주는 물음을 무관심하게 흘려보내지 않는 자세, 삶과 관련지어보는 사고화의 과정이 필요하다.
한 외국인이 ‘헤이, 빨리 빨리’라고 부르는 소리에 뒤를 보니 자기를 부르는 것이었다는 한 친구의 외국여행담을 듣고, ‘한국의 신인도가 이렇게 높아졌구나!’ 하는 감탄과 함께 ‘빨리 빨리’가 IT 산업을 선도했다는 자긍심을 느끼면서도, 외국인의 눈에 비치는 ‘빨리 빨리’가 한국인의 대명사가 되었고, 한국에 가면 ‘총알택시’를 조심해야 된다는 외국인의 당부에 여러 가지 상념으로 어수선하다.
요즈음 세 ‘아이(I)’가 문제라는 이야기가 시중에 돌고 있다.
첫째, ‘IQ’의 과신이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출연한 TV프로그램에서 사회자들은 보통 자녀의 IQ를 물어 보는데, IQ가 높은 자녀를 둔 부모들은 대단한 자랑으로 여기는 것을 볼 수 있다.
실제로 공부와 미래 성취에 미치는 순서는 자신의 노력(45%), 학습 동기(25%), IQ(20%) 등으로 밝혀지고 있다는 소리에 깊은 공명이 있어야 한다.
둘째, ‘Industry(산업)’의 발달로 인한 상품 중시의 사회이다. 명품을 갖지 않으면 행세가 어렵다는 정도로까지, 더 나아가 자녀가 명품을 만지다가 훼손시키면 심하게 나무라게 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이럴 경우, 자녀들은 자신보다 명품이 더욱 중요시 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더 심한 경우 자신을 물건보다 더 못한 사람으로 인식하게까지 되는 것이다. 물건은 사용하고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데, 사람은 사용하고 물건을 사랑하는 것은 아닌지 씁쓸하다.
셋째, ‘Instant(인스턴트)’의 상용화이다. 요즈음 즉석 식품이 활개를 치고 있다고 한다. 물에 빨리 부풀게 하기 위해서 수소까지 식품에 넣는다고 한다. ‘즉석이나 빠르게’라는 말만 있지, 정성, 인간성, 사랑, 국민의 건강, 안전은 안중에 없다. 누구를 위한 ‘즉석이나 빠르게’인가?
부드러운 이슬비가 한번 내리면 풀밭은 한층 더 푸르러진다. 우리 역시 보다 훌륭한 생각을 받아들이면 우리의 전망도 훨씬 밝아질 것이다.
자신의 몸 위에 떨어진 한 방울의 작은 이슬도 놓치지 않고 받아들여 커가는 풀잎처럼 우리에게 던져지는 물음이 주는 지혜를 모든 일에 최대한으로 이용할 수 있다면!
티끌이 모여 태산이 되고 작은 물방울이 모여 장강을 이룬다고 한다. 나에게 주어진 조건, 주어진 시간을 더없이 소중하고 감사하게 받아들일 때 우리 아이의 얼굴에 미소가 번질 것이다. 그런 깨달음을!
지식을 쌓으면서 내어주고 있는 것은 없는가를 항상 생각하는 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