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매실걷이’와 공생(共生)

‘매실걷이’와 공생(共生)

by 운영자 2014.06.16

매실나무는 계절을 알리는 표상이다. 중국 양자강 지역에서는 장마철에 매실이 익는다. 그래서 장마를 매화 비 즉 매우(梅雨)라 부른다.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중국과 크게 다르지 않는 시기에 매실이 익는다. 지난주 일요일에 고향에 가서 ‘매실걷이’를 했다. 고향의 매실나무는 집 밖 마당, 그리고 논과 밭 주변에 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매실나무를 심는 것은 열매로 엑기스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나도 간혹 매실을 엑기스로 만드는 일에 참여하지만 나에게 고향의 매실나무는 단순히 열매를 얻는 데 있지 않다. 얼마 전 집 밖 마당에 살고 있는 매실나무 아래에 평상을 만들었다.

매실나무의 그늘이 제법 햇볕을 막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매실나무 아래에 마련한 평상에 앉으면 고향 창녕의 진산(鎭山)인 화왕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요즘에는 아버지께서도 간혹 이곳에 앉아서 시간을 보낸다.

올 4월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매실나무 아래 평상에 앉아 계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 가슴이 시리다.

그러나 언제가 한번은 겪는 일인지라 너무 슬퍼할 필요는 없다. 아버지의 모습은 분명 쓸쓸하지만 그 쓸쓸함마저 인생이라 생각하면 그다지 안타까운 것도 아니다.

매실나무와 같은 유실수는 대략 심은 지 3년 만에 열매를 수확할 수 있다. 매실을 수확하는 여름철은 매실 향기로 마음을 정화시킬 수 있지만, 농촌은 매실로 마음을 정화시킬 만큼 한가롭지 않다. 매실을 수확하는 시기는 본격적인 농번기이기 때문이다.

매실나무가 없던 시절에는 매실과 아주 닮은 살구나무 열매로 농번기를 맞이했지만, 살구나무는 지금 매실나무에 밀려서 거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요즘 사람들이 매실나무를 선호하는 것은 열매가 건강에 좋다는 소문 덕분이다.

나의 고향에 어린 시절에 없던 매실나무를 심은 것도 형님들이 열매를 얻고자했기 때문이다.

매실나무의 열매를 따는 일도 결코 쉽지 않다. 고향의 매실나무는 아직 그다지 키가 크지 않아서 손으로 딸 수 있지만 꼭대기에 달린 열매는 손으로 딸 수 없다.

설령 손으로 딸수 있더라도 장갑을 끼지 않으면 가시 때문에 다칠 위험이 있다. 나는 이번 여름에 맨손으로 열매를 따다가 손에 피를 봤다.

장미과의 매실나무는 겉에서 보면 가시를 거의 볼 수 없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군데군데 본성의 가시를 간직하고 있다.

꼭대기에 달린 열매는 나무 위에 올라가서 땄다. 나무 위에 올라가서 열매를 따는 기분은 묘했다.

나무에 대한 미안함과 함께 어린 시절에 나무 위에서 놀았던 기억이 돋아났기 때문이다.

매실나무 열매를 수확하다가 청개구리를 보았다. 그러나 매실나무 위에 놀던 청개구리는 나의 등장에 깜짝 놀라 생명이 단축되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나무 위에는 크고 작은 동물들이 살지만, 인간은 열매를 먹기 위해서 약을 뿌린다. 약을 뿌리면 나무 위에 사는 동물들은 위험하다.

그러나 약을 뿌리지 않으면 벌레의 공격을 받아 열매를 거의 수확할 수 없다. 이런 모습을 보노라면 ‘공생(共生)’이 얼마나 힘든지를 알 수 있다. 공생은 생명체에 대한 근원적인 철학 없이는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