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by 운영자 2014.06.18

누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장춘에서 연길을 향해 가던 길에 만난 한글은 눈을 번쩍 뜨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도로 표지판에 한글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길림성의 수부라는 장춘에 내려 백두산을 오르기 위해 버스를 타고 이도백하로 향할 때, 가이드의 설명이 따로 없이 도로 표지판에서 한글을 만나는 것은 가슴 짜릿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마음은 연길에 도착했을 때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적잖은 조선족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 땅이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실감나게 해 준 것은 거리에서 마주하게 되는 간판이었습니다.

간판마다 한글이 눈에 띄었는데, 놀랍게도 한글이 왼쪽에 자리를 잡았고, 마치 그 한글을 한문으로는 어떻게 쓰는지를 일러주듯이 오른쪽에 한문이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위 아래로 상점이름을 쓸 때에도 마찬가지여서 간판 위쪽에 한글, 아래쪽에 한문이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 모습은 내가 지금 어디에 와 있는 것인지, 이 땅이 우리 역사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지를 절로 돌아보게 했습니다.

백두산 등정을 마친 뒤 장춘으로 돌아가 2박을 하기로 한 일정을 조정하여 길림에서 1박을 더 하기로 한 결정도 그런 생각과 무관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역사를 조금 더 자세하게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모두가 같았기에 일정을 바꾸는 일은 크게 어렵지가 않았습니다.

일송정에 오른 일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젠 찾는 이가 거의 없다는 일송정, 원래의 일정대로라면 차창으로 멀리 바라보는 것이 전부였지만 우리는 일송정을 오르는 것을 바뀐 일정의 시작으로 삼았습니다.

빼앗긴 나라를 찾기 위해 독립투사들이 남모르게 올라 결의를 다졌다고 하는 곳, 일송정으로 오르는 마음이 순간순간 숙연했습니다.

일송정 앞에는 일제가 죽였다는 소나무를 대신한 소나무 한 그루가 의연한 품으로 자라고 있었는데, 우리는 그 앞에 둘러서서 ‘선구자’ 노래를 3절까지 불렀습니다.

<일송정 푸른솔은 늙어늙어 갔어도 한 줄기 해란강은 천년 두고 흐른다 지난날 강가에서 말 달리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용두레 우물가에 밤새소리 들릴 때 뜻 깊은 용문교에 달빛고이 비친다 이역하늘 바라보며 활을 쏘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용주사 저녁종이 비암산에 울릴 때 사나이 굳은 마음 길이 새겨 두었네 조국을 찾겠노라 맹세하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용정을 유유히 돌아가는 해란강을 바라보며 선구자의 노래를 부를 때, 우리의 눈가는 조금씩 젖어들고 있었습니다.

윤동주가 다녔다는 명동학교와 대성중학교, 윤동주와 문익환 목사의 생가와 유년시절 함께 신앙생활을 했다는 명동교회를 찾았을 때도, 더운 마음은 내내 변함이 없었습니다.

동북삼성이라 부르는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이 실은 우리의 고조선이 세워진 만주 땅, 비록 지금은 중국 영토가 되었지만 그 땅을 밟는 마음이 전에 없이 새로웠습니다.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는지, 선구자의 심정으로 돌아가는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