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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라지가 흐르고

아우라지가 흐르고

by 운영자 2014.07.21

아우라지 물결처럼 / 혈관 속을 흐르는 봄// 하늘과 땅 아우르고 / 산과 강을 아우르고// 햇살은 / 구김살 하나 없이 / 명지바람 아우르고- 졸시, 「아우라지가 흐르고」전문

물레방아로 유명하던 정선에 처음 간 것은 대학 3학년 겨울방학 <민요답사>를 위해서였다.

고정옥의 『조선민요연구』를 읽으며 실제로 답사 한 번 해 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참에 학교에서 ‘정선아리랑연구'가 3년째이며 마지막 답사여행이라기에 단짝 친구인 윤관숙과 함께 신청했다.

전국적으로 많은 눈이 내린 것이 이틀 전이라 걱정을 하면서 청량리에서 증산행 기차를 탔다. 증산에서 다시 기차를 갈아타니 차안에선 정선사람들의 체취가 물씬 풍겨왔다.

기차 안에는 다양한 삶이 존재했고, 다양한 산골사람의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오후 2시쯤 기차에서 내리니 눈은 쌓여 있었지만 걱정했던 것만큼 많지는 않았다.

우리는 정선 읍내의 군청과 경찰서에 들러 우리가 온 목적을 밝히고 협조를 부탁했다.

저녁 우리는 문화원에서 소개해 준 집을 찾아갔더니, 주인은 밤이 늦었는데도 동네 아저씨, 아주머니를 불러 모아 주었다.

우리는 새우깡과 막걸리를 풀어놓고 한 잔씩 돌려가면서 흥을 돋우고, 그들이 불러주는 정선아리랑을 녹음하면서 그들의 진지한 청중이 되어 주었다.

생활 속에 토착화된 이들의 노래 속에는 삶의 고뇌, 질곡, 사랑, 아픔, 좌절, 실패, 용기, 희망, 체념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이곳 사람들의 생활과 모습이 들어 있었다. 구성진 노랫가락으로 감정을 정화하고 체념하고 달관하며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정선사람들은 정선아리랑을 정선아라리라고 한다. 정선아리랑의 발생지는 ‘거칠현’이라고 주장하는 설과 아우라지라고 주장하는 설이 있다.

거칠현 주장설은 고려말 유신들이 조선의 새 정권을 피해 이곳에 와 살았고, 그들이 부른 노래가 ‘비가 올라나 눈이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 든다 /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 넘겨주게.’라는 것이다.

만수산은 개성에 있는 산이며 검은 구름은 새로운 정치 세력인 조선이며, 고려의 칠현이 숨어 살았다하여 ‘거칠현’이라 한단다.

한편 송천과 골지천이 아우라지에서 합쳐 동강으로 흘러드는데 아우라지란 어우러진다는 뜻으로 두 물이 만나 하나의 물줄기를 이룬다는 의미의 우리옛말이다.

아우라지 유래설은 강을 사이에 두고 각각 여랑과 가금에 살며 서로 사랑을 나누던 처녀 총각이 어느 날 싸릿골로 동박을 따러 가기로 약속했으나 밤새 내린 폭우로 불어난 물줄기 때문에 서로 만나지 못하고 그리워하며, ‘아우라지 뱃사공아 날 좀 건네주게 / 싸릿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 / 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쌓이지 / 사시장철 님 그리워서 난 못 살겠네’ 라는 노래에서 유래했다고 보는 설이다.

‘정선의 물레방아는 물살을 안고 도는데 / 우리집 저 멍텅구리는 날 안고 돌 줄 왜 몰라’, ‘사발그릇은 깨어지면 두세 쪽이 나고요 / 휴전선은 깨어지면 한 덩어리가 된다.’ 등 수 천 개의 정선아리랑 가사에는 삶과 직결된 애환, 풍자, 해학이 생생하고도 진솔하게 녹아 있다. 현재에도 즉석에서 노래가 생성된다는 점에 정선아리랑의 매력이 있다는 걸 새삼 느낀 답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