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길, 길, 길

길, 길, 길

by 운영자 2014.07.23

지난 주 제천에 있는 금수산으로 등산을 다녀왔습니다. 빼어난 풍광의 금수산도 인상적이었지만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만난 ‘자드락길’이었습니다.자드락길이라니, 무엇보다 어감이 참 정겨웠습니다. 사전을 찾으니 ‘나지막한 산기슭의 비탈진 땅에 난 좁은 길’을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한 폭의 그림 같은 청풍호를 바라보며 산간마을의 실핏줄 같은 길을 걷는 것은 큰 즐거움이 되겠다 싶었습니다.

길은 길에서 길로 이어집니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던 일이 계기가 되어 만들어졌다는 제주도의 올레길은, 스스로가 또 하나의 길이 되어 지리산 둘레길 등으로 계속 번져가고 있습니다.

경북 안동에는 ‘녀뎐길’이 있습니다. ‘녀던’은 ‘가던’, ‘다니던’이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지금은 ‘녀던길’이라는 이름 대신 ‘예던길’로 불리는데, 이 길은 퇴계가 숙부로부터 학문을 배우기 위해 청량산으로 가면서 처음 걸었던 길입니다.

스스로 ‘청량산인’이라고 부를 만큼 청량산을 사랑했던 퇴계는 자주 그 길을 걸어 청량산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그런 까닭에 ‘퇴계오솔길’이라 불리기도 한다니, 이래저래 소중하다 여겨집니다.

강원도 영월 주천면에는 ‘느림길’이 있습니다.

‘주천’이라는 이름을 낳게 된 술샘, 오랜 역사를 가진 쌍섶다리, 의로운 호랑이의 무덤이 있는 의호총, 김종길 가옥 등 이야기가 가득한 길을 느릿느릿 걸어보라고 ‘느림길’이라 이름을 정했답니다.

많은 섬들이 떠 있는 여수 앞바다에는 ‘하화도’라는 섬이 있습니다. 그냥 들으면 뜻을 짐작하기가 어려운데, 우리말로 풀면 ‘아랫꽃섬’이 됩니다.

섬 이름이 ‘꽃섬’이라니, 필시 누군가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는 이가 정한 이름이다 싶습니다. 이 섬에는 이름에 걸맞은 꽃길이 조성되어 있어 바다를 벗 삼아 섬을 한 바퀴 돌 수 있습니다.

수줍은 나리꽃과 군락을 이뤄 피어나는 구절초 등이 어울려 꽃향기를 전하는 이 길의 이름은 ‘꽃섬길’입니다.

천안에는 ‘미나릿길’이 있습니다.

옛날 실개천 주변에 미나리들과 빨래하는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았던 곳을 기억하며, 남아 있던 어두운 회색 골목길에 형형색색 벽화를 그려 희망을 이야기하는 길입니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골목길을 걷다보면 마음까지 이어지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전북 완주군 고종시에는 ‘마실길’이 있습니다. 고종시의 ‘시’는 도시(市)가 아니라 감(시, 枾)을 의미합니다.

조선시대 고종 임금이 동상곶감을 즐겨 먹었다고 해서 ‘고종시’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는데, 고종시 마실길은 동상곶감을 체험할 수 있는 생태문화 탐방로인 셈입니다.

충주호를 끼고 있는 ‘종댕이길’, 시흥의 ‘늠내길’ 등 다양한 길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틀에 박힌 일상에서 벗어나 다양한 길을 걷다보면 ‘젖 먹이는 어머니’와 같은 자연의 은총을 마음껏 누릴 수 있게 되겠지요. 무엇보다 가장 귀한, 내 영혼의 작은 오솔길도 마침내 내 안에 만들어지게 될 것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