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손자 바보

손자 바보

by 운영자 2014.07.25

“손자 키워봤자 아무 소용없어요. 초등학교 들어가니 쳐다보지 않고 대학생이 돼선 할아버지라고 부르지도 안 해요” 손자와 함께 근린공원 놀이터에 갔더니 여든은 됨직한 어르신이 진지하게 말을 건다.“덕 보려고 돌보나요?” 하려다 이야기가 길어 질까봐 흘러 넘겼다. “손자가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듯이 손자 돌 보미 역할도 만만찮다. 평소 한 달에 서너 번 만나던 손자를 열흘 함께 있었다.

한주는 유아원의 한 어린이가 수족구에 걸려 피신해왔고, 그 다음 주는 손자가 걸려 발목이 잡혔다. 입안과 손발, 엉덩이에 수포성 발진이 생기면서 2∼3일은 우유나 죽도 못 먹고 칭얼거린다.

오죽 아팠으면 “(의사)선생님에게 가자”고 하겠는가. 이럴 때 엄마들은 “내가 대신 아팠으면”한다.

손자는 25개월이 지나도 말이 늦어 애간장을 태웠다. 30개월 되면서 말문이 열리더니 발음은 또렷하다. “할미”가 아니라 “할머니”, 할아버지는 “할부지”로 부른다.

사물에 눈을 뜨면서 궁금한 게 많은지 “이게 뭐야” 연신 묻는다. 버스, 승용차, 오토바이, 자전거가 지나가면 “뭐야? 뭐야?” 질문이 많아졌다.

질문이 많으니 창의성이 남다른 건가. 누구든 제 손자는 ‘천재’로 보이니까. 친구들에게 자랑 하려니 “만원씩 내야 들어 준다”고 할까봐 못한다.

손자가 없는 옛 동료는 “내 앞에서 손자 자랑은 명예훼손에 해당된다며 벌과금을 내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아 대놓고 자랑할 수도 없다.

명색이 NIE(신문활용교육) 강사 인데 함께 있는 동안 생활습관 한 가지는 바꿔주고 싶었다. 물 먹는 하마처럼 기저귀 값 축내는 손자에게 ‘응가와 쉬’ 가리기 작전에 돌입했다.

‘배변 훈련’ 그림책을 구해와 설명했다. “깡충이 토끼는 어디에 응가하지?” 풀밭 그림에 손가락을 찍는다. “야옹 야옹 고양이는?” 모래 위, “멍멍이는?” 신문지 위, “삐약 삐약 병아리는?” 상자에, “우리 집 아기는 어디에?” 변기에…. 3일 집중 교육 끝에 대변과 소변을 가린다. 손자 바보라 욕해도 좋다. 학습 성취도가 우수하다.

손자는 할머니보다 나를 잘 따른다. 우리 동네에 소문이 자자하다. 마트에 치즈를 사러 가면 카운터 아주머니가 “넌 할아버지를 더 좋아한다며?”신문에 안 났어도 안다.

건널목 야쿠르트 아줌마도 “맨 날 할아버지와 공원 가니”말을 건다. 골몰입구 건강원 아주머니는 “아이들이 잘 해주는 걸 먼저 안다니까” 한마디 거든다. 할머니는 손자 먹이려 생선을 굽지만, 뼈를 골라 먹이는 건 할아버지니까 관심이 많을 수밖에.

드디어 제 아빠가 데리러오는 금요일 저녁. 공원에 나갔다가 “아빠하고 엄마한테 가야지”했다.

평소 유모차를 타거나 안아달라고 조르던 손자가 10분 거리를 앞장서 뛰어간다. 조부모가 잘해준들 엄마 아빠만 하겠는가. 가방을 챙기고 카시트에 앉힌 뒤 “안녕 잘 가”했더니 건성건성 손을 흔들더니 승용차 문을 닫는다.

키워 봤자가 아니라, 헤어지면서도 섭섭함을 손자 바보는 안다. ‘엄마에게 간다니 공원서 집까지 콩콩 거리며 뛰어가는 모습을 보니 짠하다. 두원이를 보며 희망을 키우라’고 며느리에게 카톡을 날렸다. ‘고맙습니다. 잘 키울게요…’ 카톡 답신이 더 짠하다.